뿌리 박힌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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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0 19:05조회 99댓글 9익애
밤이었다. 창문 밖은 울부짖는 바람과 쏟아지는 비로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그 광기 어린 폭풍 속 마당 한가운데 어린 나무 하나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비의 눈은 오직 그 나무에 박혀 있었다. 작고 여린 그 나무는 떠나간 아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숨결이었다.

아비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속수무책으로 놓쳤다. 핏줄이 아물기도 전에 차가워지던 작은 손을 그는 그저 붙들고만 있었다. 살릴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딸아이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다시는 그 절망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딸아이가 한 번 더 넘어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우비를 걸치고 나섰다.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은 아비의 몸을 무섭게 흔들었다. 빗방울은 시야를 가렸지만 그의 시선은 한순간도 나무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병색이 완연했던 아이가 작은 삽을 들고 흙을 다독이던 그 마지막 기력, 다시 살아나길 소망하던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존재였다.

― 쓰러지면 안돼, 딸아..

아비의 목소리는 빗물에 섞여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젖은 손으로 거친 나무줄기를 움켜쥐었다. 준비해온 굵은 밧줄로 나무의 몸통을 감싸고, 미리 박아둔 지지대에 온 힘을 실어 몸을 기댔다. 미친 듯한 바람은 나무를 잡아 뽑으려 했다. 뿌리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나 그는 놓지 않았다. 온몸으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나무를 끌어안고 버텼다.

어두운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아비는 딸아이를 안고 병마와 싸우던 마지막 순간을 되풀이했다. 그 작은 몸으로 그 모진 통증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던 모습. 그리고 마침내, 모든 기력을 잃고 푹 고꾸라지던 순간. 그 기억이 그를 꿰뚫었다.

이 나무마저 쓰러지면 그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더는 잃을 수 없었다. 그는 딸의 마지막 소망이자 그의 마지막 남은 희망인 이 나무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기나긴 사투 끝에 새벽이 찾아왔다. 폭풍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아비는 빗물과 흙탕물에 절어, 그 나무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은 곧게 서 있는 나무에 닿았다. 많은 잎을 잃었지만 줄기는 굳건했고, 아비가 묶어둔 지지대와 밧줄은 그 곁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축축한 나무줄기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빗물 아래로 미약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살아남았다. 쓰러지지 않았다.

마치 아이가,

그의 품속에서 다시 한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뿌리 깊이 박힌 그리움으로 아이는 여전히 아비의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젖은 뺨 위로 뜨거운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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