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윤회(輪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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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5 20:57조회 77댓글 3유키노텐시
윤회(輪廻) : 매년 피는 꽃처럼 되풀이될 사랑의 약속

찰나의 순간의 영원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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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의 낙하 속도는 초속 5센티미터라고 하던가요.

하지만 예원의 시야에 담긴 벚꽃은 숫자 따위로는 가둘 수 없는, 마치 허공 속에 부서지는 비명처럼 위태롭고도 찬란하게 흩어지고 있었죠.

나무가 제 살점을 깎아 빚어낸 연분홍빛 눈 조각들이 대기 속을 유영하다가, 지면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층층이 쌓여만 갑니다. 그것은 생의 가장 눈부신 정점에서 스스로를 부려놓는 꽃들의 고결한 작별 인사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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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은 벤치 끝에 정물처럼 앉아 가만히 손바닥을 펼쳤습니다.

손금의 골짜기 위로 가뿐히 내려앉은 꽃잎 하나. 어찌나 투명하고 가냘픈지, 손끝에 감도는 맥박의 미동만으로도 금세 바스러져 날아갈 것만 같았달까.


'이토록 유한한 것에 나의 생을 기대어도 좋은 걸까.'

아름다움의 수명이 이리도 짧다면,

꽃이 떠난 자리에 남겨질 계절은 얼마나 긴 갈증으로 타오를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예원의 눈동자에 유약한 불안이 스칠 무렵, 곁으로 다가온 진우의 그림자가 그녀의 무릎 위를 포근하게 덮어왔습니다.

그는 아무런 기척 없이 곁에 머물며, 그녀의 손바닥 위에 고인 분홍빛 잔흔을 애틋하게 응시할 뿐이었죠.

진우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예원의 손 위로 아주 느릿하고 정성스럽게 겹쳐왔습니다.

그것은 예원이 느낀 진정한 봄의 온기였지요.

그는 예원의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조심스레 얽어 쥐었습니다.

마치 공중으로 흩어지는 찰나의 순간들을 단단히 결속하려는 듯, 그의 손등 위로 푸른 정맥이 은은하게 돋아나더군요.

"꽃잎은 저물어만 가는데, 그 숨결은 오히려 깊어지는 것 같아."


진우의 시선은 흐드러진 꽃나무가 아닌, 예원의 젖은 눈동자에 오롯이 침잠해 있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수채화 물감이 번진 듯 깊고 아스라한 복숭아색을 띠고 있었지요.

그는 굳이 '사랑'이라든가 '영원' 같은 무거운 단어를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예원의 손을 지그시 맞잡은 채, 입가에 수줍고도 깨끗한 미소를 띄웠을 뿐.


그것은 매년 봄이 어김없이 순환하듯, 자신의 마음 또한 그녀라는 우주의 궤도를 결코 이탈하지 않겠다는 고요한 맹세였을까요.


바람이 한차례 몽환적인 선율로 불어와 두 사람의 어깨 위로 꽃비의 범람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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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두 사람 위로 하나둘 떨어진다.


진우는 예원의 머리카락에 수놓아진 꽃잎을 떼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풍경의 필연적인 조각이 되려는 듯 그녀 쪽으로 체온을 기울였죠. 소멸의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서로의 맥박이 맞닿은 이 지점만큼은 계절의 무자비한 흐름 바깥에 놓여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일 겁니다.


예원은 그의 온건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비록 내일이면 이 길은 형체 없는 낙화의 잔해들로 가득하겠지만, 오늘 그가 건넨 침묵의 고백은 예원의 가슴 속에서 가장 선명한 빛깔을 머금은 상록수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니까요.


분홍빛 소음이 가득한 거리, 오직 두 사람의 시간만이 정지된 듯 고요하고도 찬란하게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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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아름다움 속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고백이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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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GS- Cherry Blos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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