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18:14•조회 45•댓글 4•여우비
—시험기간을 회상하고 싶지 않을 여러분을 위해 시험 이야기는 전부 생략합니다—
화창한 봄날의 점심시간, 우리는 매점으로 향했다. 손에 뭐가 묻는 것을 혐오하는 너는 콘 아이스크림을, 오래오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쭈쭈바를 하나씩 샀다. 평소처럼 포장을 뜯고 뚜껑을 따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데, 네가 툭하고 말을 던졌다.
“시험 잘 봤냐?”
“너 일부러 엿 먹이려고 묻는 거지? 네가 나보단 잘 봤을 거 아냐.”
“글쎄. 가채점해 보니까 좀 틀린 것 같던데.”
“꺼져.”
진심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너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운동장 구석 그늘 진 벤치에 앉은 너와 나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축구를 되게 잘하는 아이라거나, 인원수가 모자란 게 아니라면 굳이 친하지 않은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축구를 권하지 않았다. 나는 그럭저럭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땀이 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너를 위해 하지 않았다. 네가 땀을 흘리며 운동장을 뛰는 모습은 중학교 2학년 때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라는 벌을 받았을 적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만 난다.
어느새 비운 쭈쭈바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는 막 콘 아이스크림의 마지막 부분을 먹는 중이었다. 우리의 앞으로 유행하는 가수의 노래를 부르며 여학생들 세네 명이 지나갔다. 너는 내 옆으로 와 걸었다. 힐끔 너를 쳐다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퍽.
날아온 축구공에 머리를 맞았다. 나는 너를 보느라 눈치채지 못했었다. 눈앞에서 별이 핑 돌았다.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머리가 아파왔다. 그 다음 기억은 없다.
“으헉.”
상체가 쑤욱 올라왔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눈앞이 환했다.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다가 너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여긴 보건실이었다. 보드라운 이불의 촉감이 손끝에서 전해졌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대 옆 작고 둥근 의자에 네가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다, 나 머리에 축구공 맞고 기절했구나. 자각한 즉시 네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 괜찮아?”
“어 뭐….”
“너 덕분에 수업시간 20분 정도 날렸다. 더 자지 그랬냐.”
“이거 완전 양아치 아니야?”
너의 시큼털털한 농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도 참 한결같은 네가 부러웠다. 만약 네가 머리에 축구공을 맞았다면 나도 함께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애들이 너무 미안하다네. 그러면서 이거 두고 갔어.”
네가 내 눈앞에다 초콜릿 두 개를 흔들어 보였다.
“사실 거짓말이야. 자, 먹어.”
그러면서 너는 키득키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초콜릿 봉지를 뜯어 입에 넣었다. 달면서도 썼다.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맛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 왔냐는 내 물음에 너는 보건선생님이 주셨다고 답했다. 그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우적우적 초콜릿을 씹어 넘겼다.
반투명한 하얀색 커튼이 살짝 덮인 창으로 5월의 햇살이 들이닥쳤다.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하고. 그 눈부심에 너는 눈가를 찡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늙지 않고 평생 천진하고 해맑은 아이이고 싶다. 그러면 지금 너와의 시간을 조금 오래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둘이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서 영원히 네가 웃는 모습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갈까?”
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급식을 먹은 후 낮잠까지 자버렸더니 머리가 시원했다. 네가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
토요일 아침, 나는 12시가 다 되어 갈 무렵에 몸을 일으켰다. 전날 밤 게임에 너무 오래 매진해 있었던 건지 머리가 띵했다. 휴대폰을 열어 뒤적거리다가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침대 위에 던져 놓고 거실로 향했다.
우리 집 거실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부모님의 웨딩 사진이었다. 그 옆으로 내가 어릴 때 찍었던 가족사진과 중학교 졸업식 때 바다와 찍은 사진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아빠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5살의 기억들은 전부 잊혀졌지만 아직도 아빠의 죽음은 눈 앞에 생생하기만 했다.
드르륵.
너에게서 답문이 왔다.
—한동안 연락 안 될 것 같아.
의아했다. 연락이 안 될 일이 없을 것인데. 나는 너의 일과를 훤히 외우고 있었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불안한 생각이 덮쳤다. 또 부모님께 맞는 걸까? 그러나 곧 생각들을 거두었다. 괜찮을 거야. 이렇게 먼저 연락도 해준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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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 텀이 자꾸만 길어지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하네요. 모두 기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