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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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14:55조회 13댓글 0Garri
인간이 이토록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은) 무구한 영광을 누리며 탐욕의 짐승이 된 이유는 문자였다고 그는 생각한다.
문자는 인간의 뇌를 불현듯 스치는 발전, 그리고 약간의 폭발을 천년이고 만년이고 붙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간의 뇌에 잠시 찾아와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떠나는 발전을, 문자는 정확히 기록하였다. 발전이 쓴 검은 양절모처럼 보이는 모자의 브랜드까지도 말이다. 발전이 챙긴 “추함”이라는 이름의 기다란 기관총은 고유의 폭력성 탓에 문자조차도 기록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기록 되었다.
결국은 발전의 모든 면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사람들은 이를 계속 반복하였다. 좋은 면, 나쁜 면, 장점, 단점, 탄생, 죽음, 평화, 폭력, 이해, 편견, 등, 전부 반복하였다. 인간은 문자가 써 놓은 메뉴얼에 있는 모든 일들을 수행하였다. 마치 신념 없이 움직이는 기계와도 같아서 가끔은 인간의 뜨겁게 춤 추는 이성과 감성의 뇌와 심장을 부러워 하지 않는 본능들조차도 있다.
그는 의아해 하였다. 왜 인간은 그림 몇 가지에, 검은색과 하얀색의 뒤엉킴에, 의미 없는 곡선과 직선 몇 가지에 취하여 온갖 일들을 저지르는 걸까? 문자는 그저 선의 뒤엉킴이었다. 굵직한 흰 선과 얇은 검은 선이 서로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 내는 그림들이었다. 그 그림들에는 그 어떠한 자연의 이치와 진리가 없었다. 그림이었다. 그냥 그림. 의미 없는 그림. 아이들의 낙서와 같은 그림. 하지만, 이를 보는 인간들은 웃고, 울고, 떠들고, 분노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간혹 가다 자살하기도 한다. 왜 그깟 그림 몇 가지에 사람의 목이 달려 있는 거지? 그 사람의 머리와 몸통이 붙어 있을 기회는 왜 선이 엉킨 것에 정해져 있지?
그는 궁금해 하였다. 그의 무구한 호기심은 곧 정해진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는 인간의 강박조차 부술 기세였다. 계속 팽창하는, 우주와도 같은 그의 호기심에 안정 된 그의 인체 하나하나가 매우 섬세하게, 그와 동시에 매우 폭력적이게 망가졌다. 그의 모세 혈관 하나하나가 곧 시골 개의 눈동자처럼 되어 버렸고,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폐들에게 두드려 맞았다. 또한, 폐들은 심장을 구타하면서도 본인들 또한 갈비뼈에게 옥죄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그의 망막은 제일 먼저 무너진 기관인만큼,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착시와 환각들 중 진실인 것 만을 골라, 그에게 보내고 있다. 그의 소화 기관은 그나마 자신이 가진 본능으로 망가짐을 막아 내었다. 하지만, 속에서부터 썩어 버린 본능은 결국 곰팡이가 되어 그의 소화 기관들을 차례 차례 춤을 추며 비소의 표정으로 썩혀 버렸다. 그의 이성을 담당하기도 하던 뇌가 정상적이게 작용하기도 힘들어 졌을 때 즈음, 그는 떠올렸다.

-나도 결국은 문자로 이루어 진 감정 없는 생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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