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3 20:53•조회 87•댓글 3•해월
여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날, 너에게 작은 필름 카메라를 건넸다. 고작 손바닥만 한 상자였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는 창문 너머의 세상을 렌즈에 담았다. 뷰파인더 속 풍경은 늘 조금 더 아련하고, 필름 특유의 희미한 질감이 더해져 마치 오래된 꿈처럼 다가왔다.
그 카메라를 유난히 좋아했다.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야 하는,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소중히 여겼고, 시선 끝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처음 기타를 들고 떨리던 순간, 시험지에 지쳐 잠든 모습, 그리고 강변 석양 아래 아이스크림을 녹이며 웃는 우리의 모습까지, 그 작은 프레임 안에 찍혀 오랫동안 남을 듯 했다.
가끔 그 작은 카메라를 보며 혼잣말하곤 했다.
"이 카메라가 우리 청춘의 전부를 어떻게 담아낼까? 이 빛깔, 이 소리,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 떨림까지는 담지 못하잖아."
네 말이 맞았어. 필름 속의 저는 단지 정지된 이미지일 뿐,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던 체온이나, 은은한 향기 같은 건 함께 담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현상된 필름을 함께 봤다. 사진 속에서 넌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미소만으로도 우리 청춘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느껴졌다.
어쩌면 이 카메라는 우리의 거대한 청춘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게 아니라, 청춘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오롯이 품어준 것 아닐까.
우리의 청춘은 너무 커서 한 번에 다 담기지 않았지만, 그 순간을 담은 작은 사진 한 장은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의 소중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지금의 너만을 바라볼께. 스무 살의 풋풋함 대신, 서른의 깊이와 여유를 지니고 있지만, 렌즈를 통해 보이는 눈빛은 여전히 그 시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 작은 카메라가 우리의 남은 날들을 다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눈부셨던 추억의 조각들만은 영원히 간직해 줄 거야. 마치 늘 제 곁에 머물러 줄 것이라는 믿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