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꽃비 - 25 / 07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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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은 오늘도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나가서 강의를 듣는다. 집에 도착하면 밥을 먹고 공부를 한다. 그것이 이담의 작은 일상이였으나 그 사이사이 속 사소한 행복들에 이담은 언제나 행복했다.
그 날은 유난히 봄임에도 추웠던 아침이였다. 나갈 준비를 하고 밖을 나서는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다쟁이 아주머니들이 신나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담은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 좋았다. 피식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멈칫 했다.
"아니, 그 602호 여자는 왜 저렇게 안보인대?"
"그 여자? 어휴, 그 여자만 생각하면 무서워 죽겠어. 꿈에도 나올 것 같다니까! 글쎄, 그 여자가 말이야... 아, 왔다."
엘리베이터 도착음과 함께, 아주머니들의 이야깃소리도 아래로 내려간 듯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이담은 분명히 들었다. 602호 여자. 저번부터 602호에서는 정말 아무도 살지 않는것마냥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씩 602호에 대고 오늘 날씨에 대해, 또 밥에 대해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주구장창 해대기도 해보았으나 여전히 문고리에 걸어둔 떡은 가져갈 기미가 안보였다. 아니, 애초에 내 이야기를 듣고 있긴 한걸까...?
"...좀 무심한 거 아냐?"
***
왜인지 잠이 안와 뒤척이던 밤. 자꾸 제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던 이담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았다. 자신의 발 아래에 쪽지가 하나 있었다. 누가 버린 듯, 잔뜩 구겨져 있었다. 기괴하리만큼 반듯하고 각진 글씨체로 적혀있던건...
'온조야. 아주머니가 너 집에 없다 하셔서 쪽지를 써. 내일 아침 8시에 만날 수 있을까? 늘 만나던 곳에서. 기다릴게.'
온조? 온조는 자신의 이름도 아니였고, 자신의 지인 중에서도 온조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옆 호인 602호의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차게 식은 떡과 오묘한 쪽지. 도대체 602호에는 누가 사는건지 이담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602호로 걸어가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 아차 싶었다. 지금은 늦은 밤이다. 초인종을 누르려 뻗었던 손을 이내 거뒀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602호에 대해 아는 건 그 무엇도 없는데 왜 이 여자와 관련된 일에는 이렇게 서두르게 되는건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602호 문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 때였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602호의 문이 대뜸 벌컥 열렸다. 포스트잇을 붙일 때 손톱으로 문이라도 긁었던가? 아니면 뭐지?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었다. 이 어두운 밤에 아직도 깨어있다니.
"혜림, 혜림아...! 혜림...아...?"
쾅! 하고 문이 닫혔다. 정확히 보지 못한 그녀의 얼굴은
... 자신보다 어려보였다. 아닌가. 피곤해 보이긴 했지. 그녀는 다급하고 또 애절했다. 혜림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그 누구보다도 보고싶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아마 자신보다 더 당황했을 602호에게 말하듯, 그는 602호 문에 대고 작게 이야기했다.
"미안해요. 혹시 시끄러웠어요? ...지금 늦었으니까 얼른 주무세요.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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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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