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게ㅡ
비가 오는 그 날 여름 아침, 너는 내가 좋다고 고백하며 동시에 이별을 고했어. 나는 이 일을 두고두고 회자 할 거야. 그 날의 이야기는 조금, 또는 많이 충격 적이었으니까 말이야. 너가 잊어버린 그 날의 얘기를 이제 해보려고 해. 너가 잊으려고 애썼던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보려고.
*
“뭐? 말도 안 돼 내가 왜 영국에 가”
어릴 적 영국을 죽도록 싫어했던 적이 있다.그 이유를 물어본다면,’할아버지’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다.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정말 바쁘셨다.너무 바빠서 1년에 겨우 2번 얼굴 보는 정도였고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8살의 나는 어머니와 하루하루를 보냈고 남들은 아버지랑 놀이공원도 가고 그러는데 못 가는게 마냥 서운하기만 했다.그래서 아버지 역할을 대신해주는 외할아버지가 계셨다.외할아버지는 어린 나를 위해 힘든 몸으로 나랑 단둘이 놀러 가기도 하는 등, 아버지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해주셨다.그런 외할아버지가 잠시 아주 잠시, 일로 인해 영국에 다녀온다 하셨을 때 말려야 했었던 건지…영국에서 무사히 일을 잘 마치신 나의 할아버지는 내게 주려고 잔뜩 산 기념품을 들고 한국에 돌아오던 중 비행기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셨다.그리고 어렸던 나는 그 충격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무튼 이 일로 인해 영국에 절대 안 가려던 내가 가게 된 이유는…
“미안해 아림아 어쩔 수 없었어. 아빠 일이 너무 바쁘잖니…그리고 영국 꽤 좋을 거야. 엄마랑 같이 가자, 응?”
빌어먹을 아버지의 일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별세 이후 아버지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내가 큰 충격으로 인하여 잠시 병이 생겼었기 때문일 거다.어쨌든 간에,
“엄마 나 영국 못 가. 엄마도 이유 알잖아”
”그치만 어쩔 수 없는 걸…아림아 걱정 마. 요즘엔 비행기 사고…도 많이 줄어들었고 안전할 거야.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자“
“…”
언제까지 떼를 쓸수도 없었다. 결국 영국에 가는 것을 택했고 그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거 아닐까 한다. 그래, 사건의 시작은 이때부터인 것 같다.
.
..
“한국에서 교환 학생 왔대“
”정말? 보러 가자“
“이름이 뭐라고?”
이 학교는 교환 학생이나 전학생이 잘 안 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 학생이 왔다는 건 곧 특종이었다.
“아.림이요 아.림.”
그때 나에게 다가온 한 사람. 그게 바로 너, 헨리였다.
“아림이라고? 안녕 아림. 난 헨리야. 친해지자“
살갑게 다가온 너는 내 마음을 금방 무너뜨렸다. 힘들기만 할 줄 알았던 내 영국 생활에 꽃을 피운 건 그가 처음이었으니까.
교환 학생으로 이 학교에 온지, 영국에 온지 대략 1달이 넘은 것 같다. 나는 금세 이 학교에 적응하였다.
”아륌, 오늘 점심에 뭐 해?“, ”아리미~ 나랑 놀지 않을래?“, ”아림! 이거 먹어보지 않을래? 오늘 베이킹을 했지 뭐야“
친구들이 생긴 중에서도 나는 유독 헨리 앞에선 무엇이든 다 말하게 되었고 힘든 일 등을 말했으며 헨리는 말없이 내 얘기를 다 들어줬다.
”아림. 오늘도 일찍 왔네!“
헨리는 학교 내에서 정말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 그로 인해 단둘이 있을 시간은 많지 않았고 우연히 대화 중에 헨리가 아침 일찍 등교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헨리를 보기 위해 일찍 등교하였다.
“으응, 일찍 왔지”
”머리 핀 샀네? 이쁘다.“
”고마워ㅋㅋ. 내가 머리 핀 수집하는게 취미거든.“
”그래? 참고해야겠다.”
그렇게 매일 아침 우리 단둘이 얘기하는 시간은 정말 짜릿했다.
…“시험 끝나고 같이 놀래?”
헨리가 이렇게 말한 순간,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응…? 정말? 좋아!”
“그럼 버스 정류장에서 시험 끝나고 기다릴게”
사실 먼저 잡은 약속이 있었고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내겐 그가 우선이었다.
시험이 끝난 그 날,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그 날. 유독 비가 많이 왔고 난 30분을 채 버스 정류장에 서 기다렸다. 헨리는 무슨 이유인지 오지 않았다.
[전화가 연결 되지 않아ㅡ…]
‘부재중 연락 5개‘ ‘문자 2개’
많이 보내지도 못 했다. 너가 부담스러워 할까 봐. 기다린지 1시간 정도 되었을 때인가? 소나기였는지 비가 그치고 너가 드디어 모습을 보였다.
”미안해, 늦었지. 많이 기다렸어? 미안해서 머리 핀 조금 사왔는데.“
내가 머리 핀을 수집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온 걸 보고 바보같이 화났던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오자마자 화내려고 했는데. 바보같이 화도 못 내곤
“응? 아니,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어ㅋㅋ. 그나저나 머리 핀 얘기한 거 기억하고 있었네? 고마워 잘 쓸게.”
“응ㅋㅋ. 당연히 기억 하고 있었지. 전부터 사논 거야.“
헨리는 뒤이어 말할 듯 말듯 고민하더니
”할 말이 있는데…“
”응? 뭐가?“
”아 아니야.“
결국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 날은 짜릿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우리가-사귀기라도-하는-냥-…
그 다음주 월요일. 평소와 같이 아침 일찍 등교했는데 이상하게도 헨리는 없었다. 그 날도 비가 내렸다. 이번에는 금방 안 그칠 것처럼 거세게.
”아림!“
순간적으로 헨리인 줄 알았지만 내 친구였다.
”응?“
”오늘도 일찍 왔네. 아 맞다. 그거 들었어? 헨리랑 옆반 데이지랑 사귄대.“
…뭐? 당장 며칠 전에 그랑 놀았던 나로썬 터무니가 없었다.
잠시 뒤 교실 문이 열리며 헨리가 데이지랑 웃으며 인사를 하고 반에 들어오는 걸 보았다.
“아림…괜찮아?”
내가 헨리를 좋아한다는 걸, 내가 시험이 끝나고 헨리랑 논 것을 아는 친구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응! 괜찮아! 뭐가 어때서…ㅎㅎ.”
그 말이 거짓말인걸 친구도 나도 알고 있었지만 친구는 잠시 망설이다 힘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유독 기분이 안 좋았다. 비는 그칠지도 모르고 계속 거세져만 갔다. 그리고 난 기회를 엿보다 헨리가 혼자 남아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축하해.”
어떤 말을 할지 수없이 생각했다. ’너도 날 좋아하는 줄 알었는데 내 착각이었던 거야?‘라던지 ‘그 날 머리 핀은 왜 준건데‘라고 얘기 하려고 상상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정작 나온 말은 그게 다였다. 헨리도 아무 말 못 하고 “…고마워.” 이 말 한마디 뿐이었다.
그때 눈치가 없는 건지, 눈치 없는 척 바보같은 날 도와주러 온건지 내 친구가 와서는 하는 말이
“아림! 음 마침 헨리랑 같이 있었네? 저번 시험 끝난 날에 헨리 쟤가 데이지랑 놀았대 그 날 고백 했나 봐.”
…응? 순간 공기가 싸해진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헨리는 당황해 아무 말이 없었고 그날 늦었던 이유는 결국 데이지랑 먼저 놀고 왔기 때문이었다는 것. 이는 내가 그에게 더 실망하도록 이끌었다.최대한 괜찮은 척을 하려다가 실패해 그 날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를 했다.
’발신자 헨리, 부재중 전화 2통‘
[헨리: 내일 아침 학교에 일찍 와 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널 마지막으로 믿고 싶어서 무엇을 믿는 건지도 모르겠는 채로 아침 일찍 등교했다. 날씨가 흐린 걸 보아 곧 또 비가 올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교실에 가니 헨리가 앉아있었다.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왜인지 낯설었다. 그의 뒷모습을 본 순간 몸이 굳어버리고 말이 안 떨어져 나왔다. 겨우겨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헨리.”
그가 뒤를 돌며 날 쳐다보는 눈빛이 읽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응, 왔어?”
내가 반응이 없자 잠시 아무 말이 없더니,
“…나 너 좋아해. 근데 너랑 사귈 수는 없어. 일이 있거든. 그걸 얘기해주려면 시간이 필요해.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이런 최악의 말은 생전 살며 처음 들어보았고 더는 말할 가치도 없다 느꼈다. 실망이 스쳤다.
”…미안.“
나의 대답에 헨리는 잠시 망설이더니
”나 다음 주에 이사 가. 그럼 널 보지 못 할 거야. 문자로 주소를 써놓을테니 와줬음 좋겠어“
*
이게 다야. 나는 이후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너도 예상했듯이 더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어. 아 어쩌면 너가 말을 건 순간은 거의 없었다 보면 되겠다. 우리가 친했던 순간은 적은데 그 충격은 배로 가서 한동안 너의 집에 갈 수도 없었어. 그래서 이제야 편지를 보내 봐. 또 이사를 갔을진 모르겠지만…최근들어 친구를 통해 너가 차 사고로 인하여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잊었다고 들었어. 다 잊은 건 아니라던데 이 일은 기억 하나 모르겠다. 그래서 3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연락 해 봐. 기억 나면 답장 줘.
ps. 기억이 나든 말든 이제 너에게 관심은 없어. 어릴 적 영국을 좋아하게 해주었던 동시에 더 싫어지게 만들어줬던 너에게 이 날을 기억하나 궁금해서. 단지 그냥 궁금해서 편지 써 봐.
아림 보냄ㅡ
-
신입 아림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을 수 있기도 하고 분량 조절에 실패한 것 같지만 앞으로 성장해나갈게요💛
너무 tmi긴 하지만 제가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단편집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편지 방식으로 써봤어요ㅎㅎ
큐리 ⤵️
https://curious.quizby.me/tUC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