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유효기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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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 16:40조회 57댓글 2미드나잇
1화

수능이 끝난 지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교실은 이미 교실이 아니었다.
화려한 변화들이 창문에 반사되어 번쩍였고,
학생들의 책상 위엔 책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아이들은 서로 사진으로 남기느라 바빴다.
누군가는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그 사이에서 그녀는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아직도 문제집이 쌓여 있었고,
습관처럼 형광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딱히 풀 문제는 없었지만.

친구 한 명이 물었다.

"너는 왜 아무것도 안 해?"

그녀는 잠깐 웃었다.
"뭘?"

"탈색도, 연애도, 여행도. 이제 고생 끝났잖아. 이제 놀아야지."
"맞아. 이제 좀 놀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없을 순간이라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끝났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정말 끝난 걸까.

그날 밤,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낯선 문장이 올라왔다.

[당신의 열아홉은 39일 남았습니다.]
[회수 예정 감정: ???]
[추가 예정 감정: ???]

스팸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지우려다 말았다.

감정이 회수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그녀는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요즘 스팸도 참 정성이다."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고는 괜히 책상 위 문제집을 한 장 넘겼다.
풀지도 않을 문제를 오래 들여다봤다.

그날 이후로도 메시지는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당신의 열아홉은 38일 남았습니다.]
[회수 준비 중입니다.]

가짜겠지.

[당신의 열아홉은 37일 남았습니다.]
[회수 준비 중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짜이길 바랐다기보다는,
굳이 진짜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며칠 뒤, 친구들이 단체로 사진을 찍자며 그녀를 끌어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모두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누군가는 힐을 신고 교복대신 짧은치마를 입고 어른 흉내를 냈다.

"야, 너도 좀 웃어!"

카메라가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살짝 접고,
적당히.

-찰칵.

사진을 확인한 친구가 말했다.
"너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보여? 예전엔 멍청하게 맨날 웃고 다니더니. 수능 망쳤어?"

'예전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그 말만 묘하게 머리에 남았다.

예전의 자신이 어땠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구체적인 장면 대신 막연한 느낌만 스쳤다.

말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괜히 큰 소리로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싫은 건 싫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대로 있겠어.'

그날 밤.

[당신의 열아홉은 35일 남았습니다.]
[회수 진행률: 7%]

진행률?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터무니없는 숫자놀이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상황이 떠올랐다.

엄마가 말했다.
"수고했어. 이제 좀 편해?"

그녀는 잠깐 멈칫했다.
사실은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
끝났는데도 끝난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말했다.
"응. 편해."

편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음 한구석이 살짝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했다.

'별거 아니야.
원래 이런 거지.'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지.'

휴대폰 화면이 다시 한 번 켜졌다.
[회수 대상이 점차 정리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뭘 정리해."

몇 번정도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세게 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말을 한 번 더 고르게 되었다.

친구가 물으면 한 번, 두 번 생각하고,
부모님이 묻으면 몇번이나 더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 대신
해야 할 말을 고르는 시간이 늘어났다.

'착각이겠지.'
그녀는 또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금씩 무언가가 단정해지고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은 한 번 접고,
튀어나가려던 말은 목 안에서 막히고.

삼켰던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 채.

창밖에는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공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 차가운 공기처럼
그녀의 마음 어딘가도
조용히 정리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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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분량의 단편 소설.. 정말 오랜만입니다.. 많이 보고싶었어요 ㅎㅎ소설 쓰는 것 조차도 너무 오랜만이라 잘 못 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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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xH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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