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4 09:40•조회 23•댓글 0•유결
바다는 언제나 나를 닮았다. 잔잔할 때는 투명하고 깊이를 알 수 없고, 거칠 때는 나를 삼킬 듯 격렬하게 일렁인다. 우리의 어린 시절 여름, 우리는 모래 위에 발자국을 새겼고, 이내 파도가 모든 흔적을 단 한번의 왔다감으로 지워버렸다. 붙잡고 싶었지만, 바다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설득하곤 했다.
기억 속의 바다는 쓸쓸하면서도 찬란하다. 웃음과 눈물, 설렘과 두려움이 서로 얽혀 순간의 거품처럼 사라지고, 남는 것은 마음 깊숙이 남아 은은히 번지는 여운이 되곤 했다. 그 바다가 여리고 여려서 만지면 없어질 것 같았다. 나는 그 바다를 글로 담으며, 나와 세상이 서로에게 남긴 흔적을 천천히 되새겼다. 그 흔적들은 말없이 시간을 견디며, 나에게 다시금 이야기를 속삭였다.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했다. 조건 없이, 판단 없이, 단지 존재함으로써 나의 기억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내 안의 불완전함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그 앞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작은 파도가 되어 나중엔 큰 파도가 되기도 한다지.
바다가 곧 내 안의 세계이며, 내 세계가 곧 바다라는 사실— 그 안에서 나는 모든 흔적과 여운이 뒤엉킨 판타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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