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만팔천자. 신개념 이크출신 작가♡
마음정리쫌하고!!!! 최근 열씸히 썻던거 다시 퇴고하고퇴고하고퇴고해서 낉여왓어 천천히 읽어주세영 갠적으로맘에들어여ㅎ
https://curious.quizby.me/WOON…—
ㅤ있잖아, 바다에 무언가를 흘려보내면—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나든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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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집 주변에 있는 낡은 꽃집에서 하얀 국화 한송이를 샀다. 죽은 너를 위한 것이였다. 사람이 죽으면 대개 국화를 준다기에, 바다에서 죽은 너를 위해 바다에 국화꽃을 흘려보낼 계획이였다. 마지막도 제대로 장식해주지 못하면 아무래도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누군가가 들으면 이기적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맞는지도 모른다. 난 이기적이다. 이기적인게 뭐 어때서. 사람이 다 그래. 다들 자기만 챙기잖아. 공해영도, 나도.
ㅤ공해영이 가라앉았던 바다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이 옆자리에 공해영이 앉아있었는데, 원래 있던 애가 없으니 괜히 외로웠다. 옆자리 의자 위에 손을 올리고 공해영을 떠올리고 있는데 만석인 버스에서 날 째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 눈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손을 떼어냈다. 에이씨, 공해영 자리 뺏겼다. 이건 좀 미안하네. ···죽은 애한테 자리까지 미안해야 하는 건가. 진짜 꼴사나웠다.
ㅤ옆을 보면 괜히 짜증날 것 같아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로 가는 길에 낡아빠진 것들이 눈에 띄였다. 요컨대 버스 노선도, 표지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 그리고 아무데나 핀 민들레같은 것들이 시골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 날 밤이 떠올라 눈을 감았다. 양옆이 지옥이니 아예 시야를 닫기로 했다. 눈을 감으니 버스가 덜컹이는게 더 잘 느껴졌다. 버스 안인데도 시끄럽게 통화하는 할머니 목소리, 설렘에 가득찬 목소리로 소근소근 얘기하는 연인의 목소리, 가끔씩 방지턱을 지나갈 때면 덜컹이는 버스의 진동까지 다 거슬렸다. 옆에 공해영이라도 있었으면 진짜 큰일날 뻔했다. 슬며시 눈을 뜨고 창문을 바라보자,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바다였다.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었다. 옆에 앉은 뚱뚱한 아저씨가 뭐라 투덜댔지만 딱히 듣지는 않았다. 시원한 바람에 바다냄새가 이끌려왔다. 음, 시원하다. 출렁이는 파도와 함께 휩쓸려갔을 공해영이 생각나서 급히 창문을 닫았다. 왜 이럴 때 생각나고 난리야. 어쨌든간에 바다가 보인 이상 내려야했다. 주머니에 쑤셔넣어뒀던 국화를 꺼냈다. ···좀 못생겨졌긴해도 괜찮겠지. 공해영 거니까.
ㅤ못생긴 국화, 못난 공해영. 운명이네, 운명. 국화를 손에 들고는 계속 생각했다. 이게 맞나.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더러운 동정이야말로, 무책임한 고백이야말로 이게 아닌가 싶어서 고민했다. 그래도 공해영이라면··· 국화 한 송이 바랄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텁텁한 모래바닥을 밟고 바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야,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죽음 아니냐.
ㅤ“···괜찮긴 개뿔.”
ㅤ그래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국화꽃을 바다에 흘려보냈다. 하얗게 떠오르던 것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동안, 나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건 당연하잖아. 그냥 공해영 넌··· 좀 늦게 태어났고, 좀 빠르게 죽은 것 뿐이야. 그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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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고백
by; 운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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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그 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는 주구장창 토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내자 장기들까지도 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콩팥이나, 폐같은 그런 것들을 내뱉다보면 내 몸 안은 텅 비게 되겠지. 그럼 너의 기억도 몽땅 사라져버리게 될까. 그럼 좋겠다. 그럴수만 있다면 좋겠다.
ㅤ공해영의 웃음이 귓속을 긁었다. 귀를 막아도, 문을 닫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더러운 동정이 담긴 그 눈빛, 사랑스럽게 올라간 입꼬리까지 그 모든것이 너무나도 역겨워 잊어버리려 했는데 잊혀지지가 않았다. 당장이라도 내 입에 손을 넣어서, 그 손을 뇌까지 집어넣어서, 공해영의 존재 자체를 꺼내버리고 싶,
ㅤ우웩.
ㅤ헛구역질을 했다. 겨우 손가락 좀 집어넣었다고 공해영은 쉽게 나와주지 않았다. 구토면 구토지, 헛구역질은 또 뭐야. 씨, 자존심이나 상하게···.
ㅤ네 이름이 바른 글씨로 적힌 샛노란 명찰, 네 손이 닿은 기타, 그 기타에 붙은 네 친구들의 알록달록한 명찰들, 내가 줬던 초콜릿까지, 네가 없는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엥, 초콜릿? 이건 내가 화이트 데이랑 발렌타인데이 헷갈렸을 때 주변 편의점에서 대충 사와서는 공해영 손에 쥐여줬던 거 아닌가? 그게 왜 여기있어. 그렇게 간식 안줬다고 난리를 피워댔으면서 처먹지도 않았네.
ㅤ소파에는 항상 발라당 누워서 티비 채널을 돌리던 공해영이 있었고, 거실 식탁에서는 반숙과 완숙 중 뭐가 좋냐며 물어봐놓고는 타버린 달걀을 가져오던 공해영이 있었고, 또··· 작은 방에서는 내게 눈물을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던 공해영이 있었다. 내 발이 닿는 곳마다 공해영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아파서 아까전 헛구역질은 기억도 안났다.
ㅤ“하씨···, 공해영.”
ㅤ네 이름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글자 한글자에 힘을 주어 불러보기도 했고, 스쳐지나가듯 해영아- 하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걸 알면서도, 공해영을 죽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불렀다. 그럼 바다 밑에 가라앉은 네가 내게 와주기라도 할까봐.
ㅤ너가 사라져도 내 일상엔 네가 남아있었다.
넌 죽었는데도 왜 이렇게 날 괴롭혀.
ㅤ아, 내가 죽였지. 그치.
ㅤ그래서 그러는거구나.
ㅤ미안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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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근데 너 나 좋아했잖아. 근데 왜 이렇게 괴롭히냐? 솔직히 목숨까지 내다버릴 정도로 날 좋아했으면 작작 좀 생각나라. 내 머릿속에서 아예 사라져주면 안되냐 이 말이야. 내 맘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둔 장본인은 여전히 저 작은 방에 살고 있다.
ㅤ바다에 국화꽃을 흘려보낸 뒤로 공해영이 닿아있는 모든 물건들을 방에 처박아뒀다. 계속 내 눈길이 가는 곳에 있으면 자꾸 생각날까 봐 공해영의 기역 자라도 생각나는 물건이라면 다 집어넣었다. 공해영으로 가득찬 작은 방에 들어갈 용기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안들어갔다. 자주 작은 방 문 앞에서 머뭇거리기는 했다. 자꾸 얘기소리가 들리잖아. 네 목소리가 들리잖아.
ㅤ“너어는 진짜. 그러면 안되지. 적어도 너는 그러면 안되지.”
ㅤ“내가 뭘.”
ㅤ“너는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해야할 말이 있다고, 너한테···.”
ㅤ내 이름 하나도 제대로 못 부르면서 뭘 그러지 말래. 엉엉 울면서 자길 쳐다보지 말라던 공해영이 아직 저 작은방에서 살고 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까지도 나와 눈을 맞추려던 공해영이 저 방 안에서 울고 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놓고 저 방에서 자기 혼자 엉엉 울고 계신다.
ㅤ“좀 조용히 해···.”
ㅤ“야,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어떻게 네가 그러냐구···.”
ㅤ“···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ㅤ내 말에 눈물을 그치고 훌쩍이는 공해영은 또 웅얼거렸다. 그만 질질 짜라고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들을 생각을 안하는 공해영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다보단 들을 좋아하던 공해영을 영원히 바다 속에 가둬버렸으면서 공해영을 위로하던 나는 무슨 생각이였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이해하려해도 도저히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다. 하긴, 내가 공해영을 좋아했는지 안좋아했는지조차도 모르고 애를 죽였는데 아는게 있을리가 있겠나. 내가 그 정도의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공해영은 저 방이 아니라 내 옆에 꼬옥 달라붙어있을터였다.
ㅤ나는 공해영을 좋아하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공해영은 확실히 날 좋아했다. ···아니, 그것도 믿을 순 없다. 공해영은 입에 좋아해를 달고 살았다. 그 좋아해에 진심이 담겼는지는 모르겠다. 공해영이 뱉은 진심이 담긴 좋아해는 아마 내게 오지 않았을것이다. 항상 공해영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으면서 입으로는 내게 무책임한 좋아해를 건냈다. 그 고백이, 무책임한 고백들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드는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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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작은 방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어떡하지, 진짜 들어가봐야하나. 작은 방 안에서는 아직도 공해영의 투덜대는 소리가 새어나오는데 어떻게 들어가라는거야. 그래도 언젠간 한 번 들어가야했다. 그게 오늘일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내 기타가 저기 있다. 공해영의 명찰이 붙어있다고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저 지옥에 처박아둔 내 기타가.
ㅤ사실 누군가가 기타가 그렇게도 필요했느냐 묻는다면 난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기타는 핑계고, 그냥 공해영의 흔적이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없던 공해영의 일상들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보기로 했다. 그런데 발이 안움직였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채로 멍하니 방문에 기대어 생각했다. 내가 들어가도 되는건가.
ㅤ끼익, 쿵.
ㅤ들어온 작은 방은 생각보다 더 더러웠다. 아, 그 때 좀 생각하면서 둘걸···. 그리고 방에 공해영은 없었다. 아까전까지만해도 신나게 떠들던 공해영은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망할 공해영. 내 기타는 방 가장 깊은 곳, 공해영의 기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기까지 내가 갈 수 있을까. 일단 제자리에 주저앉아 바로 앞에 있는 것들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공해영이 왜 날 그렇게 봤는지, 왜 그렇게 무책임했는지. 그 정도는 알아둬야 나도 편해질 것 같았다. 절대 공해영이 그리워서가 아니고. 내가 죽여놓고 그리워하는 건 역시 꼴사납잖아.
ㅤ“···와.”
ㅤ이게 언제적거야. 편지인가? 여러개인거 보니까 주고받았나본데. To 공해영··· 왜인지 이건 보기 싫다. From 해영이가? 이건 공해영이 쓴건가? ···언제 쓴거지. 왜 지 편지를 지가 가지고 있어.
ㅤ- 항상 내게 무덤덤하게 반응해주는 척하면서도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날 신경써주는건 너란걸 알고나니까 너가 다르게 보이더라. 늘 해영아 해영아 불러줘서 고마워! 맨날 맛난 밥 해줘서 고마워!! 니가 짱이야. 너같은 친구 둔게 내 인생 최고의 행운임!
ㅤ···다른 거 봐야겠다. 못 보낸 편지가 두 개나 되네. 러브레터는 아니겠지?
ㅤ- 네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이 편지가 갈진 모르겠다. ㅋㅋ 사실 나 너 부모님 만났어. ···그동안 힘들었
ㅤ툭.
ㅤ떨어트렸다. 저번에 한 번 지나가다 본 편지였다. 그 땐 그 문장만 보고 화가 나서 찢어버리려다 말았는데, 이딴 문장들도 있었구나. 그 인간들을 만났다고? 어떻게? 나도 성인 되고 못만나본 인간들을 어떻게 만났는데? 그것도 공해영이? ···하, 이걸 더 읽어 말아. 일단은, 일단은. 그 인간들에 대해서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공해영이 애꿎은 욕이라도 들었을까 걱정되어 떨어진 편지를 다시 주웠다. 먼지를 털고 아까 읽었던 부분에서부터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ㅤ- 그동안 힘들었지? 근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더라. 두 분도 너 되게 보고싶어하셔···. 물론 너한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처지인가 싶긴 하지만. ㅎㅎ
ㅤ오해는 무슨. 그 문장 뒤에도 기가 차는 것들이 많았다. 두 분도 너 되게 보고싶어하셔. ···그렇구나. 내가 보고싶다는 인간들이 빚만 떠넘기고 떠나버렸구나. 그 뒤는 읽을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런 걸 보니까 또 그런 생각밖에 안들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너무··· 뻔하잖아. 이런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데··· 자꾸 공해영에 대한 짜증만 치밀어서 결국 편지를 찢어버렸다. 한결 편해졌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빚이란 빚은 다 나한테 떠넘기고 도망가놓고 연락 한 통 없던 인간들이 날 왜 보고싶어하는데. 같이 산다는 애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겨우 그거냐? 가서 내 편이라고는 하나도 안들었겠지. 편 들어줄 생각도 안했겠지. 멍청하게 바보처럼 그 인간들 구라치는 거 다 받아주고 있었겠지···. 상상하니까 더 열받네.
ㅤ다른 몇몇개 물건들은 다 쓰잘데기 없고 시시하기만 했다. 그냥, 공해영 손에 닿았던 물건들이 다였다. 6시에 맞춰져 있는 알람시계,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 LP같은. 공해영이 샀던 LP 플레이어에 끼워 노래를 틀었다. 에라이, 감미로운 노래는 딱 질색인데. 말로는 좀 투덜대긴 했지만 노래는 그냥 틀어뒀다.
ㅤ노래 취향부터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 나와 공해영은 통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어릴 때는, 그러니까 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땐 그래서 재미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건 우리 관계에 악영향만 줬다. 알 수 없는 영어로 가득찬 가사의 노래만 듣고있자니 정신이 없었다. ···끌까? 아니다. 한 번도 공해영이 뭘 듣는지 뭘 생각하는지 궁금해한 적 없었잖아. 이미 죽여놓고 이제와서 공해영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추모 겸으로 하는거지, 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해영이 좋아하는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날이였다.
ㅤ끝내 마지막 줄까지 읽히지 못한 편지는 조각조각이 나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평소 공해영이 글씨를 어떻게 쓰는지, 무슨 습관이 있는지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그 편지의 주인은 당연히 공해영이 되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선 그랬다.
ㅤ결국 기타도 챙기지 않고 공해영의 물건들도 정리하지 않은 채, 공해영의 흔적으로 가득찬 작은 방 안에서 알 수 없는 영어를 들으며 하루가 다 가버렸다. 공해영이 죽은지 이틀째가 되는 날이였다. 기분이 묘했다. 지금쯤이면 공해영이 잘자라며 앵겨붙어야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이미 죽은 애 생각을 뭣하러 하나 싶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공해영이 다 차지한 상태였다. 그래도 공해영을 죽인 걸 후회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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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해파리, 조개, 물고기.
ㅤ일어나자마자 티비를 틀었다. 공해영이 없어서인지 집 안에 흐르는 어색한 적막이 짜증나서 틀어뒀다.
ㅤ해파리, 조개, 물고기, ···공해영?
ㅤ죽을 때 봤겠네. 해파리는 쏘이면 아플텐데. ···조개가 바다에 있나? 물고기는 있겠지. 어떤거 봤을까. 공해영 니모 좋아하는데. 걔가 뭐였더라. 흰동가리? 검은동가리는 아닐 거 아냐. ···그런데 공해영은 왜인지 다른거 보기도 전에 눈을 감았을 것 같았다. 안그래도 물이 무섭다며 자긴 죽을 때 절대 익사로는 안죽겠다던 애인데. 눈을 어떻게 뜨겠어.
ㅤ이런 사소한 건 아는데 공해영의 습관이나, 취향 같은 건 모른다. 이건 어느 종류의 무관심일까. 애초에 관심을 준 적은 있나? 아, 처음엔 좀 줬다. 빚을 다 갚고 할 거 없었을 때. 심심해 죽기 직전의 나에게 다가온 유일한 살아 움직이는 것,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 나보다 작지만 굳이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 것,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변수인 것. 그게 공해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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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공해영과의 첫인상은 공원에서였다. 공해영 말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본인이 날 지켜봐왔다고 말했지만 잘 모르겠다. 거짓말을 압에 달고 사는 애니까.
ㅤ스물 중반쯤, 빚을 다 갚자 시원하긴 커녕 더 막막하기만 했다. 커다란 목표 하나가 사라지니 내 몸에도 그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분이였다. 대학교도 다 포기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뼈 빠지게 일한 결과였다. 그래서 온종일을 집 근처 좁아터진 공원의 벤치에서 보냈다. 가만히 앉아 멍때리기만 하다 집에 가기가 일쑤였다. 시간 보내기에는 최적이였으나 그다지 뿌듯하진 않았다. 당연했다. 앉아서 죽치고만 있는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리가. 빚을 다 갚았을 때도 이렇게 무감각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땐 아주 약간의 뿌듯함과 상실감이라도 느꼈지, 다 갚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엔 로봇이 된것만 같았다.
ㅤ그 때 내게 다가온게 공해영이였다. 길고 새까만 생머리에, 웃을 때마다 예쁘게 휘어지는 눈매가 마음에 들었다.
ㅤ“안녕하세요!”
ㅤ“···아, 네.”
ㅤ이전에도 한 번 본 사람이긴 했다. 매일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가끔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공해영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항상 제 몸보다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서 러닝하는 여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였지만.
ㅤ“항상 여기 계시네요. 시간 어지간히 없으신가봐요.”
ㅤ“네? 아, 뭐. 그렇죠.”
ㅤ“아, 장난이였는데요···.”
ㅤ망한 첫인상이였다. 장난 하나도 못 받아치는 재미없는 사람으로 찍혔겠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공해영은 웃고 있었다. 것도 엄청나게 크게 웃어댔다. 좀 시끄러울 정도로.
ㅤ“아, 죄송해요. 너무 크게 웃었다.”
ㅤ그렇게 말하고 가방을 뒤적이더니 공해영이 종이쪼가리를 건냈다. 종이쪼가리에 적힌건 공해영의 이름과 전화번호였다. 명함이라기엔 너무 부실했고 단순 번호 교환이라면 그냥 말로 해도 되지 않겠는가. 공해영은 그런 애였다. 불필요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애.
ㅤ“···공해영씨구나.”
ㅤ“편하게 부르세요! 나이가 몇이세요?”
ㅤ“스물 여섯쯤 됐을거예요.”
ㅤ“그럼 동갑이네. 편하게 해! 아, 이름이?”
ㅤ그 때부터 공원에서 마주치면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 공해영과 나는 생각보다 가까운 고등학교에 다녔던 것과, 공해영이 고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별로 쓸모가 있진 않았다. 공해영이 없는 공원이 어색해졌을 때쯤부터 나는 공원에 가지 않게 됐다. 대신 공해영이 내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ㅤ“나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돼?”
ㅤ라고 말하기에 또 장난이겠구나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도 공해영은 굴하지 않고 계속 여기서 살겠다 악을 썼다. 부모님에게 더 이상 해를 끼치기 싫다했었나, 집이 없댔었나···. 무튼간에 공해영은 별의 별 핑계를 대면서까지 같이 살겠다 했다.
ㅤ“하필 왜 난데.”
ㅤ“나 친구가 없어.”
ㅤ“너 나 좋아하기라도 하냐?”
ㅤ원래라면 왜 내가 널 좋아해? 라며 온갖 짜증은 다 내야할 공해영이 무슨 바람이라도 들었는지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도 묘했다. 그 때 본 공해영의 새빨개진 귓가는 아직도 생생하다.
ㅤ“···야, 설마. 아니지.”
ㅤ“일주일만 살아보자. 응? 그러고 너가 싫다하면 나 나갈게.”
ㅤ내가 어떻게 널 거부하냐고. 이미 정은 들대로 들었고 밖에 나가면 사이비들이나 꼬일 것 같은 애를 어떻게 내보내. 머리에 자연스럽게 사이비들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공해영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렸을 땐 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공해영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ㅤ“알겠으니까 그만 좀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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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그렇게 공해영과는 계속 같이 살게 됐다. 신기하게도 같이 살 때엔 얘가 진짜 날 좋아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티를 내지 않았다. 그만큼 속으로는 서러워할 공해영을 알기에 굳이 언급하진 않았던 것 같다. 같이 살게 된 후로는 자주 놀러갔다. 특히 그 바다에 자주 갔다. 공해영이 죽은 바다. 공해영을 삼킨 바다.
ㅤ바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틀어놓고 한창 감상에 빠져있을 때쯤 폰이 울렸다. 연락 올 데라곤 공해영이나 스팸 문자밖에 없는데 공해영은 이제 없으니··· 후자겠지, 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후자는 아니였고, 모르는 번호였다. 그리고 모르는 번호로부터 온 연락은,
ㅤ- 네 엄마다.
ㅤ- 얘기 좀 하자.
ㅤ엄마의 연락이였다. 엄마라고 하기조차 싫은 인간에게 드디어 연락이 왔다. 어렸을 적 그 누구보다도 보고싶었던 인간이 십몇년이 지나고 나서야 연락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인데 막상 하려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손도 떨어가며 겨우 보낸 말은 '누구세요'였다.
ㅤ- 이젠 모르는 사람 취급까지 하니? 아무리 그래도 나 너 키워준 사람이야.
ㅤ- 전화라도 해. 그 애가 번호 줬어.
ㅤ그 애? 그 애라면 공해영밖에 없었다.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공해영밖에 없었으니까. 그 사이에 번호까지 줬구나, 너는. 진짜 믿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구나···. 전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내 끊겼다. 그리곤 낯선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역겨웠지만 들었다. 어디 한 번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보자.
ㅤ“그만 찾아오라고, 너한테 하고 싶은말은 너한테 하라면서 번호를 주더라고. ···이름이 공해은이였던가, 그 애한테 받은 편지 없니?”
ㅤ“없어요.”
ㅤ공해은 아니고 공해영인데.
ㅤ“아, 난 또··· 네가 엄마 글씨체를 기억하는 줄 알았어. 거짓말인걸 다 알고 그러는 줄 알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말하는거야. 어차피 모르니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래도 진심이야. 많이 후회했어.”
ㅤ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글씨체라니, 이 여자가 내게 편지를 쓴 적도 없을텐데. 잠깐, 편지? ···편지라면 공해영이 쓴 거밖에 없잖아. 급히 전화를 끊으려다 마지막으로 묻고싶은게 있었다.
ㅤ“저 왜 버렸어요?”
ㅤ“안버렸어. 그건 버린게 아니지. 그냥 사정이 좀 있었어서 불가피하게···.”
ㅤ할머니한테 맡겼잖아. 아니, 맡긴 것도 아니지. 할머니네에 두고 도망갔잖아. 할머니 죽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었는데.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참아냈다. 이렇게 말해봤자 내 감정따위 하나도 이해못할 인간이였다.
ㅤ“더 이상 연락하지마.”
ㅤ그 여자의 음성이 잦아들자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이상하게도 희미하게 공해영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자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거절, 거절, 거절. 수신차단을 했다. 다른 번호로도 전화가 오길래 수신차단을 또 했다. 아예 폰을 꺼버렸다.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작은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공해영의 다이어리를 꺼냈다. 미안, 공해영. 글씨체만 볼게.
ㅤ- 4월 15일. 걔의 엄마가 날 또 찾아왔다. 벌써 몇 번째야? 이번엔 본인이 쓴 편지를 내가 쓴 것마냥 꾸며내달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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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4월 15일.
ㅤ걔의 엄마가 날 또 찾아왔다. 벌써 몇 번째야? 이번엔 본인이 쓴 편지를 내가 쓴 것마냥 꾸며내달라 요청했다.
ㅤ“학생, 학생한테 이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잖아. 그냥··· 편지만 좀 전달하는거야.”
ㅤ뭐라는거야···. 편지를 기어코 집까지 가져온 나를 원망해야지 어쩌겠어. 찢어서 불태우고 싶었는데 편지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서 못했다. 언젠간 걔에게 모두 사실대로 터놓고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걔는 날 싫어하는데. 저번엔 또 나한테 화를 냈다. 두려워.
ㅤ4월 16일.
ㅤ걔한테 친구가 많아보이고 싶어서 붙여뒀던 그 새끼들 명찰을 몇 개 떼어냈다. 이름만 봐도 토할 거 같아서 그냥 뗐다. 몇 개는 안떼졌다. 짜증났다. 날 죽일 기세로 팼던 새끼들 이름이 왜 여기에 있어···. 그래도 기타에 내 명찰이 두 개 있길래 하나는 걔한테 줬다. 걔 기타에 내 이름이 있다. 이걸로 만족!
ㅤ4월 17일.
ㅤ걔가 본 것 같았다. 편지를 찢을지 말지 계속 고민하다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에 내 책상 앞에 걔가 있었다.
ㅤ“···이거 뭐냐?”
ㅤ“아, 아무것도 아니야!”
ㅤ감추긴 했지만 걔가 날 쳐다봤다. 실망스럽다는 그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무서웠다. 걔가 날 미워하게 되면 어떡하지···. 난 걔를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걔가 날 미워하는게 더 커지면 어떡해.
ㅤ4월 22일.
ㅤ그 여자가 또 찾아왔다. 이번엔 뭐라고 하려고. 자꾸 나보고 도와달랜다.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더니 내 앞에서 자기합리화를 했다. 알바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하는 일이 겨우 이거라니 열받았다. 그래서 해선 안될 짓을 했다.
ㅤ“이거 걔 번호니까, 이제 그만 찾아오세요. 걔한테 할 말 걔한테 하시라고요. 전 도와드릴 생각 없어요.”
ㅤ“하, 참나···. 왜 연락이 안오나 했어. 너가 그 애한테 다 고자질했구나?”
ㅤ“왜 이제와서 그러세요. 걔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ㅤ그 여자가 하는 말이, 걔는 자기 자식이란다. 당연한게 아니냐 묻는데 당연하긴 개뿔 여태 잘만 모른 척 해왔으면서 이제와서 챙기는 척 하는 꼴이 역겨웠다. 딱 봐도 목적이 있어보였는데 더 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여자는 내 말에 뭐라 궁시렁거리더니 나갔다. 다행이다. 이제 안오겠구나. 걔에겐 너무 미안했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ㅤ4월 22일 저녁? 새벽?
ㅤ걔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걔는 자기 엄마 얘기하는 것도 꺼려하는 앤데···. 벌써 연락했으면 어떡하지? 안그랬겠지.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해야했다.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하니까. 걔가 날 무책임하다 생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난 책임을 져야했다.
ㅤ거실로 나가 걔에게 말을 걸 생각이였다. 방 안에서 첫시작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망설이는데 걔가 먼저 내 방으로 와 말을 꺼내줬다. ···고마웠는데 미안함이 더 컸다.
ㅤ“뭐하고 있어, 거기서.”
ㅤ“저기, 너 엄마··· 말인데···.”
ㅤ사실대로 다 얘기할 생각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거짓없이. 그 속에서 걔가 화를 낸다해도 다 받아줄 생각이였다. 당연했으니까. 화가 나는게 당연한 일을 저지른건 나니까···.
ㅤ“아, 편지. 그거 한문장밖에 안봤어.”
ㅤ“응? 아,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게···.”
ㅤ“넌 할 말도 없으면서 왜 내 앞에서 이렇게 알짱대. 짜증나게. 항상 너가 나 동정어린 눈빛으로 보는거, 내가 모를 것 같았지? 불쌍하다는 듯이. 그거 넌 못겪어봐서 모르나본데 진짜 존나 역겨워. 너가 아는게 뭐 있다고 날 그렇게 쳐다봐. 넌··· 뭣도 모르면서 왜 다 오해라고 치부하냐고. 그러니까 너가 하는 모든 게 가벼워보이잖아. 무책임해. 고백도, 편지도 다.”
ㅤ“진짜 그런거 아니야, 야 왜 그래···.”
ㅤ“나한테 온전한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왜 너까지 이래···.”
ㅤ걔의 마지막 말은 내가 하고싶은 말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던 걔가 좀 미웠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한테 온전한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왜 너까지 이래. ···내가 뭘 했다구. 내 얘기 듣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일렁이는 시야 속 오직 걔만 뚜렷하게 보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게 느껴지는데 나는 닦지도 않고 걔만 쳐다봤다.
ㅤ“너어는 진짜. 그러면 안되지. 적어도 너는 그러면 안되지.”
ㅤ“내가 뭘.”
ㅤ“너는 그러면 안되는거잖아···.”
ㅤ걔는 그러면 안됐다. 적어도 걔만은.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걔가 감정을 표현할 구석은 나밖에 없다는걸, 얘기를 터놓을 상대도 나밖에 없다는걸 알면서도 자꾸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가 지금 걔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도 알았지만 서러웠다. 걔가 날 증오하는게, 걔의 엄마가 날 찾아오는게, 모든게···.
ㅤ“좀 조용히 해···.”
ㅤ“야,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어떻게 네가 그러냐구···.”
ㅤ“···알겠으니까 조용히 해.”
ㅤ나에게 화내던 걔는 결국 내 눈물을 닦아주며 타일렀다. 자꾸 조용히 하라던 걔는 내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나보다. 죽고 싶었다. 죽고싶을만큼 수치스러웠고 서러웠다. 걔 엄마가 날 쫓아오는 것도 버거웠는데 걔가 날 미워하니까··· 증오하니까··· 너무 힘들다. 내 삶에서 믿을 건, 기댈 수 있는 건 걔밖에 없는데. 괜히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이렇게 힘들었나? 그건 아니였던 거 같은데. 노는 애들한테 죽도록 맞았어도, 반 애들이 모두 있는 곳에서 망신을 당했어도 이것보다는 버틸만 했었다.
ㅤ바다에 가야겠다. 돌아오는 월요일쯤 갈까? 바다에 가면 또 걔와의 추억이 떠오르겠지? 죽일듯이 싸우다가도 화해할때면 꼭 가던 바다, 처음 갔을 땐 마냥 아름다웠었으나 이내 우리의 추억으로 가득 차버린 바다에 가서— 그 추억에 잠겨 죽는 한이 있어도 걔를 떠올리고 싶다. 마지막까지 걔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최고의 죽음이잖아. 나를 어둠에서 끌어준 구원자인 걔를.
—
ㅤ더 이상 공해영의 일기를 읽을 수 없었다. 내가 공해영을 죽인게 맞았다. 진짜 내가 공해영을 죽였고, 공해영은··· 다 나 때문에···. 글씨체는 확연히 달랐고 페이지마다 있는 연필이 번진 자국도 편지엔 없었다. 왜 이거 하나도 몰라서는 그랬을까. 공해영한텐 나밖에 없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모진 말만 골라 뱉었다. 아, 미련한 새끼. 아 진짜······. 공해영에게 온전한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는데 그런 내가 공해영을 못살게 굴고 기어코 내가 죽여버렸다. 미안해, 공해영. 내가 진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로 표현되지 않을 상황이란걸 알았다. 아는데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죽고 싶었다. 온갖가지 죄책감이 순식간에 밀려들어와 날 덮쳤다. 마치 아주 커다란 파도처럼. 그 날 공해영을 덮쳤던 파도처럼···.
—
ㅤ바다에 갔다. 화해하려고. 그 날의 공해영처럼, 공해영과 함께 가졌던 그 모든 추억에 잠겨 죽으려고.
ㅤ버스를 놓칠 뻔했다. 막차라서 놓치면 큰일이였는데 다행이였다. 저번처럼 공해영 자리를 뺏은 뚱뚱한 아저씨도, 거칠게 운전하는 버스 운전사도, 시끄럽게 통화하는 아줌마들도, 속닥속닥 웃으며 대화하는 연인들도 없었다. 늦은 시간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였지만 왜인지 씁쓸했다. ···저번이랑 정반대네. 내 마음도, 상황도. 전부 다.
ㅤ“아······. 공해영.”
ㅤ네 이름을 괜히 불러봤다. 공해영이 다 장난이라고, 미안하다고 나한테 다시 달려와주기라도 할까 봐. 저 바다 너머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게 와주기라도 할까 봐···.
ㅤ밤공기에 실려 넘어온 바다의 향기는 짰다. 입 안을 맴돌던 향을 삼켰다. 넘실대는 파도의 소리가 내 귀 속을 파고들었다. 이 소리 속에서 끝까지 날 마주하려했을 공해영이 참 불쌍했다. 보고싶었는데 보고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공해영을 보고싶어해. 감히 내가 어떻게 그래.
ㅤ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다 앞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서있던 여자애. 공해영. 바다 앞에서 머뭇거리다 이내 한발자국 한발자국, 바다를 향해 걸어가던 공해영.
—
ㅤ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끝맺음도 못하고 죽어버리려하는 공해영이. 진짜 무책임하다, 넌. 무책임한 고백과 무책임한 사랑, 무책임한 죽음. 다 공해영다웠는데 거기서 공해영을 그냥 죽게 놔둘 순 없었다.
ㅤ공해영은 내 앞에서 엉엉 울다, 내가 잠든 사이 집을 나갔다. 도어락 소리에 잠에 깼을 때 공해영은 이미 집에 없었다. 괜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 예감이 든 이상 무시할 수가 없어서 급하게 나갔다. 어딜 가야할지도 모르겠어서 한참을 망설이는데 공해영이 어딜 갔는지 알 것도 같았다.
ㅤ바다.
ㅤ항상 화해의 대화를 나눌 때마다 갔던 바다이기에 어쩌면, 정말 어쩌면··· 바다로 가지 않았을까. 공해영 바다 말고는 갈 곳 없을텐데. 택시를 잡았다. 12시가 넘어서 택시비가 겁나게 비쌌다. 아씨··· 걔가 뭐라고.
ㅤ바다에 왔다는게 차가운 공기로 느껴졌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에··· 여자애가 보였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공해영이였다.
ㅤ“야, 공해영.”
ㅤ뒤를 돌아본건 공해영이 맞았다. 바다를 향해 발을 내딛다 날 향해 고개를 돌린 공해영은 울고있지는 않았으나 위태로워보였다. 저러다 확 죽는 건 아닌가 싶어 손목을 붙잡았다. 공해영 손목이 원래 이렇게 얇았던가? 원래 이렇게 애가··· 작았나.
ㅤ“내버려 둬.”
ㅤ“싫어.”
ㅤ“아, 제발 좀. 이거 놓으라고.”
ㅤ내 손을 뿌리치고 공해영은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손을 놓자마자 바다로 내달릴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였다. 감기 걸릴텐데 빨리 들어가자고 하려던 참에 공해영이 먼저 말했다.
ㅤ“내가 다 미안해. 무책임한 것도 미안하고, 그냥 다 내가 잘못했어···.”
ㅤ“들어가자. 감기 걸리겠다.”
ㅤ“아니, 아니야.”
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무책임한 건 나였다. 화낼 대상은 공해영이 아닌 그 여자였고, 일기를 훔쳐본 것도 나였으며 무심코 본 한 줄만 가지고 공해영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그 때 내가 한 말이야말로 무책임한 고백이였다.
ㅤ공해영은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나와 점점 멀어져가는 공해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붙잡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이윽고 공해영의 발 위로 바닷물이 일렁이고, 그리고 공해영이 점점 더 깊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려 할 때···.
ㅤ“야, 공해영—!!”
ㅤ그제서야 난 공해영을 붙잡았다.
ㅤ공해영은 놓으라며 악을 쓰고 날 밀어냈다. 순간 발이 푹, 하고 빠졌다. 시야가 돌아가면서 공해영을 놓쳤다. 차가운 바닷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온 그 순간에 놓쳐버렸다. 공기, 바닷물, 발에 닿는 모래바닥, 모든게 다 차가운데 공해영이 사라졌다. 내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공해영은 그 깊은 곳으로 이미 사라져버렸다. 내가 놓쳤다. 내가 죽였다. 내가 공해영을 죽였다. 숨을 헐떡이며 겨우 위로 올라왔는데 이제 내 곁에 공해영은 없었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짠맛과 바닷바람에 더 차갑게 느껴지는 다리가 방금 전까지 공해영과 바다에 있었다는 걸 체감시켜줬다. 마지막으로 들은건 공해영이 부른 내 이름이였다.
ㅤ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야첨벙어푸어푸첨벙첨벙철썩철썩철썩야철썩철썩철썩철썩백하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경철썩첨벙첨벙살철썩철썩어푸철썩어푸철썩려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줘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백철썩철썩철썩하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경철썩철썩철썩하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경아철썩철썩철썩나철썩철썩철썩철썩첨벙죽첨벙철썩나봐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철썩···.
ㅤ야, 야 백하경.
ㅤ살려줘.
ㅤ백하경.
ㅤ하경아.
ㅤ나 죽나봐.
ㅤ야, 공해영. 나 사실 들었어. 너가 마지막에 나 부른것도, 살려달라 빈것도, 다 들었어. 들었는데. 아씨, 무시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내가 너 죽인거로 하자. 사실 기억도 안나. 내가 왜 그 때 네 목소리를 무시했을까. 나 살기 바뻐서···. 내 목숨 그깟게 뭐라고.
ㅤ그렇게 공해영이 죽었다.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채로 미안하단 말만 전하고 죽어버렸다. 죄책감에 휩싸여 소리를 질렀다. 무의미한 말들을 뱉어냈다. 내가 공해영을 죽였다는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미워도 그 정도로 미워하진 않았는데. 죽길 바랄 정도는 아니였는데.
ㅤ그래서 자기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공해영을 죽인 건 다 이유가 있었다고. 공해영은 날 버린 엄마를 단순 오해라 치부했고, 공해영은 내게 무책임한 고백을 던져놓고 떠나버렸다고. 그래서, 그래서 죽인거라고······.
—
ㅤ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저 멀리 물체가 보였다. 사람 같아 보여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닐거란걸 알면서도 괜히 다가갔다. 에이, 아니겠지. 공해영일리가 없잖아. 걔가 어떻게 다시 돌아와.
ㅤ“있잖아, 바다에 무언가를 흘려보내면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나든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대.”
ㅤ공해영이 해준 말이였다. 몇백년도 몇천년도 안지나서 너가 내게 돌아와준걸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해준 못난 나를 탓하려 온걸까. 그게 무슨 이유든 너가 와준거길 바랬다. 아닐걸 알면서도 그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건,
ㅤ공해영이였다.
ㅤ새까만 머리카락과 긴 속눈썹, 그리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까지. 공해영이 아닐수가 없었다. 항상 눈을 크게 뜨고는 날 쳐다봤었는데, 왜 눈을 감고 있어···. 눈 떠, 눈 뜨라고···. 나 여깄잖아. 나 좀 봐보라고···.
ㅤ차라리 바다가 책임을 져줬으면 좋겠다. 그러게 왜 죽였어, 왜 공해영을 데리고 갔어. 그치만 바다에는 책임이 없다는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죽을 것 같았다. 그 때 네가 보인것이였다. 바다는 아무리 책임이 없다지만 이건 너무 무책임하잖아···. 이렇게 보여주는게 어딨어.
ㅤ어쩌면 난 공해영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좋아해는 너무 가볍고, 무책임한 것 같고··· 그래, 사랑해가 맞겠다. 그걸 공해영이 죽고나서야 알아차렸다. 내가 공해영을 사랑한다는걸. 공해영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항상 쪼르르 달려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새까맣게 탄 달걀을 가져와놓고는 예쁘게 웃는 것을··· 공해영의 그 모든 걸 사랑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공해영의 차갑게 식은데다가 불어버린 손가락을 잡으려는데 공해영이 무언가를 쥐고있었다. ···아, 진짜. 이러면 난 어떻게살라고···.
ㅤ눈물이 앞을 가려 마치 물 속 세상처럼 모든게 일렁거렸으나, 공해영이 손에 쥔 저 하얀색 꽃만큼은 뭔지 알 수 있었다. 국화꽃이였다. 구겨진데다가 물 속에 있었기에 꽃잎도 조금 빠진, 젖은 국화꽃. 이걸 본 이상 나는 작은 희망에 내 전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와준거구나. 국화꽃도 너가 받았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 몇 백년은 무슨, 너는 몇주도 안되어서 내게 돌아왔다. 그런 너와 마지막을 함께하려면 지금밖에 없지 않겠어······?
ㅤ넘실대는 파도가 나를 불렀다. 한 발자국, 해영아, 사실은. 한 발자국, 네 목소리가 기억이 안나. 한 발자국, 너가 내 이름 불렀었잖아. 한 발자국, 그 목소리가 기억이 안난다고···. 너를 꼭 껴안고 바다 앞까지 갔다. 차가운 바닷물이 발을 쳤다. 내게 축 쳐진채로 안긴 공해영의 귓가의 무어라 속삭이고는 다시 발을 옮겼다. 공해영이 빠졌던 저 바닷속으로. 저 바다 깊은, 우리의 추억 속으로. 무책임했던 고백들의 결과 속으로.
ㅤ“사랑해, 해영아······. 이건 진심이야.”
ㅤ파도가 쳤다. 철썩철썩···.
ㅤ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