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Seri… 로비에서는 여전히 에블린이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었고, 남은 사람들은 에블린의 옆에서 그녀를 보조하거나 창 밖으로 소행성을 바라보며 궂은 미래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몇몇은 반쯤 패닉이 온 채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방황했다.
“여러분!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내가 시끄러운 소릴 내며 등장하니 에블린을 제외한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정돈되지 않은 일곱 쌍의 눈동자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주었다. 일단은 모두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제임스가 말하길, 우주선의 후면에 조금 충돌이 있을 거랍니다. 그걸 제외하고는 모두 건강할 거예요.”
저들끼리 소란스레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말은 믿지 못하더라도 제임스는 굳게 믿는 그들이었다. 세계에서도 나노라하는 재능인들만 모인 이곳이었으므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말이 옳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다시 내 말에 집중했다.
“에블린은 중력 복구에 집중해주세요.”
“이미 하고 있어요. 반쯤은 해결됐어요.”
에블린이 낮게 중얼거린 뒤 다시 손을 움직였다. 확실히 다가가긴 어렵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제이크와 한수는 저와 함께 동면실로 갈 거예요. 동면기를 로비로 옮길 겁니다. 남은 분들은 창고에서 최대한 많은 물건을 로비로 옮겨 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승무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려 우주선 후면으로 이동했다. 창고는 로비보다 한 층 아래에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계단 쪽으로 이동했고, 나를 포함한 세 명만이 허공에 뜬 물건들을 치워가며 하루빨리 동면실로 향했다. 사실 충돌한다면 가장 먼저 망가질 장소가 이곳, 동면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제임스가 왜 우리에게 식량이나 연료가 아닌 동면기를 가져다달라고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동면기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임스가 어떤 생각이 있겠거니 어림짐작하기만 했다.
한수는 동면실로 들어가는 내내 줄곧 말이 없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도 말이 없던 편인 터라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냥 균형을 잡는 것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그에 반해 제임스는 평상시보다 말이 많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요? 우주선이 완전히, BOOM! 난리 나게 생겼잖아. 에블린에게 오류가 났다는 사실은 들었는데 그거 때문에 소행성이 충돌하는 거죠? 우현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나중에 제임스에게 물어보려고요.”
“아, 그렇군요! 나중에 함께 물어봐요. 그나저나 이제야 소란스러워졌잖아. 사실 그동안 좀 지겨웠는데, 죽도록 연습한 무중력 체험도 실제로 해 보고! 이제 진짜 우주로 온 것 같네. 이래야 재밌지.”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제이크가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패닉이 와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가끔 한수에게도 말을 걸었는데, 역시나 한수는 무시로 일관했다. 제이크는 그것에 주눅들지 않았다. 나는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제이크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면실에 도착했다.
동면기는 역시나 제멋대로 떠 있었다. 나와 한수는 동면기를 하나씩 붙들고선 다시 로비로 향했다. 제임스는 생각보다 할만하다며 동면기를 하나 더 집어들어 두 개를 몸 속에 품은 채 우리의 뒤를 좇았다. 그 상태에서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NASA의 무중력 수업이 헛되진 않았나 보다.
아무리 무중력이라도 내 몸보다 족히 두 배는 더 나갈 물건을 짊어지고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끙끙대며 움직이고 있자니 방송이 들려왔다.
― 제임스입니다. 충돌 5분 전입니다. 모두 속히 조종실로 돌아와주시길 바랍니다.
한수와 나는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로비로 돌아왔다. 제임스의 방송을 듣고 먼저 로비에 도착해있던 창고 팀은 우리의 동면기를 대신 들어주며 물었다.
“제이크는요?”
“아, 맞다!”
한수가 그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순간 몸이 무거워지더니 모두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엉덩이부터 떨어져 꼬리뼈가 부러진 것 같은 통증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나보다 아파 보이는 사람은 많았다. 심지어 리사는 동면기에 다리가 깔려 어찌하지도 못하며 깔린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당장 리사에게로 달려가 무거운 동면기를 함께 들어냈다. 리사는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그녀의 정강이가 파랗게 부어올랐지만 뼈가 부러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리사는 심한 상처가 아니라며 우리를 안심시켰지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우리 중 유일한 의사였기에 잠자코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난 에블린을 쏘아봤다. 그녀는 어깨만 으쓱였다.
“제 걱정해주셔서 고마운데, 저는 제이크가 더 걱정돼요. 혹시 다들 제이크를 잊은 건 아니겠죠? 제이크 먼저 도우러 가세요. 저는 다리가 이래서······.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리사는 날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긴급한 상황에, 심지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챙기려는 리사가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곧 주머니에서 붕대를 꺼내 홀로 상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골절이 생긴 건 분명해 보였다. 난 다친 그녀를 뒤로하고 먼저 제이크에게 달려나간 동료들의 뒤를 따랐다.
― 예상 충돌 3분 전입니다. 당장 복귀하세요.
제임스가 방송으로 소리쳤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순 없었다. 제이크는 아직도 로비에 도착하지 못했다. 동면기를 두 개나 들고 있었던 만큼 그는 어쩌면 리사처럼, 혹은 리사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지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비와 창고 등을 연결하는 복도 사이에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이크였다.
“드디어 지원군이 왔군!”
제이크는 우릴 보며 알 수 없는 기합 소리를 냈다. 그는 대단하게도 아직까지 동면기 두 개를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뒤에서 밀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클로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저 제이크예요, 클로이!”
제이크가 근육을 과시하며 말했다. 세빈은 그를 미친 사람 보듯 바라봤다. 그녀는 앤디와 함께 제이크를 수레 위에 태우려고 했다. 제이크는 강렬하게 저항했다.
“이봐, 난 건강해! 나 말고 이 동면기들을 수레 위에 올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왔는데!”
― 2분 남았습니다. 다들 괜찮으세요? 왜 아무 소식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빨리!”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곤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동면기를 혼자서 들어올리려고 했다. 나는 제이크의 기합에 기가 눌려 그와 함께 동면기를 들었다. 족히 100kg은 되어 보이는 동면기는 건장한 남성 셋이 몰려들고 나서야 겨우 들렸다. 동면기를 겨우 수레에 태웠을 때 또다시 제임스의 방송이 들렸다. 이젠 1분.
승무원들은 아무 말 없이 곧장 로비로 뛰었다. 이젠 생명이 위험했다. 고작 동면기 두 개 때문에 죽을 순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내다버린 동면기는 제이크가 홀로 부담했다. 그는 수레를 끌면서도 우리의 속도에 뒤쳐지지 않았다. 난 그의 멘탈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로비에 도착한 건 나였다. 날 뒤쫓아오고 있는 승무원들을 확인한 뒤 난 조종실로 향했다. 그동안 또 한번 방송이 울렸다.
― 셔터 내립니다. 모두 로비로 모여주세요.
난 방송이 끝날 때쯤 조종실에 도착했다. 제임스는 조종실에서 우주선의 평면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집중한 제임스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소리 내지 않으며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제임스가 평면도를 향해 손짓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홀로그램에 자물쇠처럼 보이는 잠금 장치가 생겼다. 우주선이 덜컹거리며 구조가 변형하는 소리가 났다. 방과 방 사이의 통로에 굵직한 셔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충돌 경고음이 얕게 퍼졌고, 과부하된 엔진 탓에 우주선 내부는 미세하게 진동했다. 셔터가 바닥 끝까지 내려오고 몇 번의 이중 잠금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조종실로 들어왔다. 리사는 클로이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었고, 맨 뒤쪽에는 제이크도 보였다. 인원은 총 열 명. 다행이었다.
“제임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소행성은 뭐고, 인공지능이 오류란 말은 또 뭐고······. 우리 괜찮은 거 맞죠?”
승무원 중 한 명이 불안스레 물었다. 제임스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인공지능 오류 때문에 소행성 발견이 늦었고,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일단 조종실과 로비의 통로를 제외한 모든 곳에 셔터를 내렸습니다. 인공지능이 대부분 고장나서 충돌 범위 계산이 힘들어서요······. 그냥, 제발 최대한 작은 손실이기를, 빌 수밖에 없어요.”
조종실에마저 충돌 위험 반경에 놓이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며칠간의 생존은 보장할 수 있을 테였다. 승무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인공지능이 고장났건 소행성이 얼마나 크건 하는 게 아니었다. 우린 당장 목숨이 위험했다.
10, 9, 8······.
홀로그램이 조종실을 가득 채우며 충돌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흔들림이 클 거예요! 몸을 고정해요, 빨리!”
7, 6, 5······.
나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헬멧을 대충 얼굴에 씌우고, 우주선 벽에 패어있는 고정 장치에 손을 끼워넣었다. 충돌 즉시 가장 위험한 상황은 몸이 튕겨나가 벽에 부딪혀 급사하는 것이었다. 승무원들은 각자 곧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리사와 클로이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언제 가져온 건지 모를 이불을 바닥에 깔고 있었고, 제이크는 이불 한 개를 홀라당 빼가 자기 몸에 두르고 있었다. 몸이 비교적 작은 에블린과 세빈, 미현은 조종기 밑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고, 제임스와 앤디, 한수는 세 개밖에 없는 조종기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4, 3, 2······.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았다.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우주 뒤 갈라진 소행성의 파편이 보였다. 소행성의 미약한 중력에 이끌렸기 때문인지, 소행성의 회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모를 진동이 우주선 전체를 휩쓸었다. 그것이 곧 충돌한다는 증거 같아 무서웠다.
1.
······.
부웅, 작은 소행성이 우주선 측면에 닿았다. 한순간 우주선 전체가 요동쳤다. 난 고정 장치를 붙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튕겨나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뇌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으면 지금 당장 뇌진탕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난 미리 바닥에 이불을 깔아 둔 리사에게 감사했다.
승무원들은 몸에 전해지는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곧이어 우르르 쾅 하는 음파가 차가운 금속 벽을 타고 내부로 울려 퍼지며, 충돌로 인한 충격이 음파와 함께 퍼져나가 또 한번 우주선이 휘청였다. 그건 마치 거대한 망치로 우주선을 내려친 듯한 충돌이었다. 그 충격에 모든 장비가 삐걱대며 불규칙하게 흔들렸고, 벽면 일부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충격은 끊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머리를 붙잡곤 겨우 일어섰다. 서 있기가 어려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고정시키며 주변을 확인했다.
안전벨트를 착용한 세 명은 비교적 다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제이크는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온갖 곳으로 튕겨나갔지만 말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니 건강했다. 리사와 클로이는 사다리 뒤에 몸을 고정시켜 얕은 타박상이 생긴 것을 제외하곤 건강해 보였고, 에블린과 세빈, 미현도 조종기 아래에서 서로의 몸을 지탱하고 있어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운 좋게도 충격 범위는 조종실에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떨림은 있었지만 우주선 벽이 갈라지진 않았으니까. 생각보다 우리 쪽의 타격은 크지 않다.
우주선은 어떻게 됐지?
생각할 새도 없이,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선이 기울었다. 연쇄 폭발의 끝은 우주선 붕괴였다. 커다란 붕괴음과 함께 우주선은 두 동강이 났다. 조종실의 창 밖으로 우주선의 조각난 파편들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홀로그램은 다시 우주선의 평면도 모양을 띄웠다. 평면도는 언뜻 보면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전면 모듈과 후면 모듈이 쪼개진 채 점점 그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결된 각 우주선 모듈의 인공지능이 서로의 위치를 측정해가며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홀로그램으로 보여줬다. 그 거리의 차는 겨우 우주선 한 개가 들어갈 정도였다가, 점점 격차가 커져 우주선 백 개가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넓어졌다. 그러다 이내 후면 모듈과의 연락이 끊겼는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전면 모듈만이 홀로 남았다.
우주선이 돌아가며 가끔 창 밖으로 보이는 후면 모듈이 마치 점처럼 작아지게 되었을 때에야 진동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승무원들은 정말 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진동이 끝나고도 몇 분간 긴장을 놓지 않았다. 고정 장치를 붙잡은 손이 저릿해질 때쯤 제임스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달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