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눈이 내리는 시간 _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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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0 17:37조회 26댓글 2풋사과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조용히, 천천히.
3년 전 그날처럼,
세상 위에 은은한 하얀 장막을 드리우며.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낡은 철제 지붕 아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그 자리.

차가운 공기가 가만히 폐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머니 속엔 접힌 편지 한 장이 있었다.

그 속에는 단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좋아해.’
그 단어는 나를 너무도 무겁게 만들었고,
또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내 손끝은 그 편지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다.
몇 번이나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내 마음도 들락날락했다.

그날은,
내게 말할 용기를 주지 않았다.
네가 다가왔을 때,
내 가슴은 요동쳤고,
입술은 떨렸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다른말이 나왔다.
“올해도 눈만 오겠네.“

그 말은
너와 나 사이에 깔린 침묵을 깨뜨리려는 듯,
가벼운 바람처럼 흩어졌다.

너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내 마음속에 깊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때 갑자기 울린 네 휴대폰 소리.

너는 화면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그 한마디가
시간을 멈추게 했다.
나는 붙잡지 못했다.

내가 꺼내려던 말들은
눈송이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너는 이미 뒤돌아섰고,
그 뒷모습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차가운 손으로 접힌 편지를 꼭 쥐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날과 다르지 않게,
조용하고도 끈질기게.

말하지 못한 말들은
그 눈송이들 사이에 숨어
아직도 내 안에서 흩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은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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