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6 08:16•조회 34•댓글 3•Garri
-고통을 느껴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다쳐줘. 아파줘. 죽어줘. 죽어줘. 죽어줘. 죽어줘.
-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건 이제 포기하지 않았어, 엠마?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어. 네가 내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걸 나는 용납할 수 없어. 네가 나와 다르게 영생을 살면서 행복을 계속 누린다는 걸 나는 용납할 수 없어.
-이제 집착이 되버렸어, 엠마. 이건 먼지가 가득 쌓인 낡은 다락방 속 밀랍 인형에게서 피를 보겠다며 칼로 긋는 것보다 더 한심해. 나는 애초에 흠집조차 안 나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네 손목과 목에서 (인간성의 상징이자 나약한 인간의 끝을 암시한다고 엠마가 피에 굶주린 시인 마냥 말한) 붉은 피를 봐야지 정신을 차리겠다고. 알겠어?
엠마가 미쳐 가는 듯 하다.
-그만 좀 해, 엠마 엘리자벳 스튜어트. 너가 나를 공격한 부위마다 하루 동안 문신이 생기잖아. 올해부터 상사가 자꾸만 나에게 물어봐. 매번. 매번. 매번! 그 붉은 문양은 뭐냐고. 내가 애써 매일 공사장 옆 공원의 꽃가루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겨울 되어서 꽃도 다 졌겠다. 맨날 물어 보는 상사가 가을에 안 와소 꽃 없는 가을에는 그냥 숨겼지, 이제는 그 상사가 오는 겨울이라고!
-그만 해! 나도 이런 일 하기 싫었다고…… 그런데, 내 친정 어머니가 암에 걸려 죽고 친정 아버지가 차에 치여 죽고 내가 결핵에 걸릴 때 너가 혼자서 건강한 게 나는 싫다고! 나도 평범한 남자와 걱정 많지만 그래도 재미 있고 굴곡 진 삶을 보내고 싶어.
우리 사이도 충분히 굴곡 졌다.
-너 같이 걱정 하나 할 것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하고 아내의 자격지심을 투영하는 남자 말고!
벌써 일 년 째다. 엠마가 해하지 않은 내 몸 부위들은 없다. 엠마는 칼을 들고 내 몸을 긋는다. 처음에는 내가 와이셔츠의 소매나 바지로 어느 정도 숨길 수 있는 손목, 발목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절대로 숨길 수 없는 내 눈이나 배를 그었다. 지금은 내 목을 긋고 있다. 칼로 몸을 긋는 일 뿐만 아니라, 내 음식에 독을 타기도 하였다. 세제, 에아무리 심각한 당뇨 환자여도 먹기 힘든 과도한 인슐린(당뇨병 환자는 커녕 건강 걱정 하나도 한 적 없는 내게 주었다), 수은, 염산, 표백제, 등을 내 주스에 타고는 하였다. 눈에 진 붉은 문양을 안대로 가리기에는 눈이 너무 아팠다. 아픔을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아팠다. 수은이 자꾸만 입에 잔가시처럼 걸렸다. 뭐랄까, 액체기는 하지만 부모에게 들은 건전하고 안전하며 행복하고 존중 받는 부부 생활에 문제가 된달까?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는 지 자신처럼 뻔하고 평범한(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엠마 스스로가 그렇게 느낀다) 존재를 사랑하는 지 모르겠다. 나는 엠마를 사랑한다고 신의 눈 앞에 말할 수 있다. 설령 내가 이 길고 아름다운 삶을 끝내고 지옥으로 떠나는 일이 거짓의 대가이더라도 말이다.
오늘도 회사에 가는 길이었다. 출근길은 오늘따라 어두었다. 새벽부터 아내와 말다툼을 해서 그런 지, 차라리 버스에 치여 지금 죽어 버리는 편이 엠마에게도 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뭐, 나는 그래도 죽지 않지. 하지만, 불사의 조건으로 가지게 된 문양이 내 몸 전체를 덮어서 어서 집이나 화장실로 가서 하루를 지새워야 할 걸?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의 날씨를 보아라, 나와 엠마의 파국으로 치닫는 관계와는 다르다. 뭐,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밀을 건내시는 나의 초등학교 과학 선생님이자 암으로 떠나가신 장모님이신 엘리자벳 스튜어트 님 말로는 “겨울은 온도가 낮은 대신, 분자가 활발히 움직이지 않아 고기압이다”고 말하였으니, 집의 압력이 무겁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본래 유치원 때부터 나는 계속 하늘이 부러웠다. 압력 없이 시원하게 지내니까. 하지만, 기압에 대한 사실을 들은 뒤로는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다.
차가운 겨울에게 눈동자가 있다면 푸른 색일 것이라 중국어로 노래하는 중국인 소녀가 보였다. 아름답고 환희에 가득 찼다는 낮에 진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망각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고 어설프고 비관적이며 모두를 비통함으로 보는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소녀는 여전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돈 많은 집에서 온실 속 난초처럼 자란 딸이다) 저기 저 대기업의 건물에 진 그림자에서 약간 벗어나 법원의 그림자에서. 저 소녀를 전에 본 적이 있다. 내가 자주 다니는 빈민층을 위한 세탁소를 운영하는 동양인 아주머니의 딸이었다. 그 중국인 아주머니는 실제로 돈이 많았다. 미국에서 3 손가락 안에 드는 언론사에서 높은 자리를 꿰찬 남편을 두었고, 본인도 과거 금융 회사에서 제법 많은 돈을 벌고 퇴직하여서 본인이 저축해 둔 돈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돈이 없었을 때 그랬듯 빈곤에게 고통 받는 (나 같은)이들을 돕고 싶어 다른 세탁소의 5분의 1 밖에 안 되는 돈으로 쓸 수 있는 세탁소를 운영하신다. 어린 아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매사에 긍정적인 제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 제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헤도 제법 행복하게 지낼 듯 하다. 저 가족을 보면 드는 생각은 한 개 밖에 안 된다. 그저 부럽다. 그냥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자신의 몸뚱아리를 배우자라는 매우 의미 없고 한심한 존재에게 바치는 광대가 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죽지 않지만)
나는 버스가 오자, 부랴부랴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에 타면, 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군집처럼 되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뭉개뜨리기에, 기분 나쁜 소음을 자아 낸다. 나는 버스에서 의미 없는 생각 여러 가지를 하며 기다렸다. 버스를 타는 재미는 그닥 없었다. 하지만, 계속 탔다. 이용하기 쉽고 그리 비싸지도 않으니까.
-삐익? 끼이이이이이이익! 꽝! 콰아아아아앙! 콰가강!
거기까지 기억 난다. 그때는 순간 시야가 검어졌고, 잠에 드는 느낌이었다. 일어나 보니, 엠마가 웃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깰 수 있을까?
-거대한 충격은 아무리 재생해도 견디기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