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vi 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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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5 20:31조회 47댓글 05eo1z
나와 미하엘은 고요한 적막 속 그 단락을 반복해 읽었다. 이내 미하엘의 손 끝은 움찔했고, 나는 모르는 사이 오른 다리를 떨어대고 있었다.

* ... 이제 어쩔까.

나는 왼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단락 부분을 불로 지져 태웠다. 재는 조금씩 떨어져 미하엘의 허벅지에 붙었고, 미하엘은 허벅지를 털며 일어나 말했다.

* 아주 지독하고 더러운 잡놈이 붙었네.

그것은 아마 미하엘의 의미심장한 각오이자 다짐이었을 것이다.

~

* 의뢰가 들어왔어.

미하엘은 서스럼 없이 아침을 준비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굳어있는 내 표정을 보곤 무덤덤히 혼자 대화를 이었다.

* 상황이 좀 꼬여가는 것 같아.

그럼에도 난 미동 없이 바닥만을 응시하며 침묵만을 유지했다.

* 불란 정부의 의뢰야.

그제야 나는 고개를 확, 들어 눈 앞의 미하엘을 쳐다보았다. 미하엘의 표정은 어딘가 해탈하기도, 두려운 눈빛이기도 해보였다.

미하엘은 침착히 식사를 준비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발을 고정했다. 동공은 너무나 빠르게 요동쳤지만 몸은 그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는 듯했다.

* 뭐...? 상황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이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어. 이건 좀 아니야.

* 아니, 이게 맞아. 현실이야.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란 것을 알고 있었잖아.

나는 미하엘의 이어지는 답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안전불감증인지, 무조건 한 번은 일어날 일임을 알면서도 그동안 깊게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으니까.

* 불란도 알아챘네...? 우리가 살인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이 온통 칠흑이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고 그려지지 않았다. 상상조차 불가능 할 압도적인 압박이었다. 불란과 범비가 동맹을 맺는 순간, 나와 미하엘은 죽는다. 분명했다. 하나의 오차도 없었다.

* 진정해, 아담 아델론. 시간은 있어. 범비는 온통 신도시니 이런 후진 불란과는 동맹을 맺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아직 승산은 있어. 몇십 시간을 날아 적도 부근에서 다시 업무를 시작한다던가...

미하엘은 지금 괜찮은 척 중이었다. 저 눈빛과 손이 무지막지하게 떨리고 있음에도 애써 숨기며, 모른 척하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정말 멍청했다. 어리석었다.

* 무슨 미친 소리야, 미하엘. 불란이 아니면 또 어딜 간다고? 적도 부근 다른 나라라니. 가당키나 한 소리야?

나의 날카로운 답변에 미하엘은 당황한 듯 내게서 조금 멀리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걸상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 네 말대로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온통 범비와 불란에 대한 의뢰만 머릿속에 가득 차서는, ...

미하엘은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사실 못한 쪽에 더 가까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미하엘이 19년만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구박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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