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0 13:46•조회 73•댓글 2•해월
계절의 시계가 돌아, 성하는 점차 그 기세를 거두는 길목이었다. 거리를 메운 바람은 여전히 여름의 온기를 품고 있었으니, 햇살은 맹렬함을 덜어내고 저녁의 나른한 온기를 머금었다. 낡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던 두 사람.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하늘을 높이 볼 수도 없고 땅만 봐왔던 둘에겐 하늘만큼 땅만큼의 존재였다.
저 멀리, 떠오르는 구름의 끝자락은 찬란한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그날의 햇살은 마치 오랜 세월을 거쳐 바랜 고독한 사진처럼, 하늘 위에서 서서히 엷어지는 빛을 내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온 몇 장의 꽃잎이 발끝에 소리 없이 차갑디 차가운 벤치 위로 내려앉았다. 그 무언의 낙하를 지켜보던 사람은, 어느새 그 자리에 앉아 시간의 침잠을 흘려보냈다.
그 옆에 앉은 사람은 나직이, 여름의 종말을 고했다.
"오늘 하늘, 참 아름답지 않아?"
두 시선이 찰나의 순간 마주쳤고, 그 짧은 교차 속에서,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소리 없이 심해를 스쳐갔다. 바람은 이제 명백히 선선했고 차가운 감도 있었다. 가까운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파편들이 한데 섞여,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극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느려진 걸음으로, 다시 길을 따라 나섰다. 가로수의 끝에서 떨어진 나뭇잎 하나가 춤을 추듯 공중에서 선회하며 내려왔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아, 하늘은 깊고 넓은 밤의 인디고 색을 띠었다. 그 여름은 이처럼 쉽게 멈추지 않는 유수처럼 흘러가고, 그 계절의 끝자락, 흐름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마지막처럼, 그러나 끝내 아무런 말 없이,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기를. 그 여름을 기억하는 방식만이 앞으로의 유일한 약속이 될 터였다.
우리의 사랑은 찬란하고도 허무하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