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의 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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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5 17:45조회 32댓글 0오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너를 떠올렸다. 머나먼 인영처럼 아득하게 멀어진 기억 속에서,
네 작은 숨결과 발자국마저 하나하나 곱씹으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사계의 풍경은 물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흩어져 버리고, 나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증식시키듯 혼자 되뇌였다. 봄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네 목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살짝 흔들리는 듯 느껴질 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내 심장은 나날이 커져만 가고,
그 박동을 더는 감출 수 없어
결국 공백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서히 뭉개지는 사계의 윤회 속에서
나를 감싸는 것은 연민도, 후회도 아닌
오직 너의 잔상뿐이다.

나는 유칼립투스를 한 줄기 바친다.
심장을 꽃병처럼 만들어 그 안에 오래된 상처와 기억을 담고, 내 안의 비소와 고통을 조심스레 에너지로 바꾼다. 카타르시스의 이명은 끊임없이 울리지만,
그 소리는 결국 내 존재 전체를 감싸며 너의 말소리로 바뀌어 퍼진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복잡해도 내 귀에는 오직 네 목소리만이 남아 온 세상을 가로지른다.

여름이 지나, 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나는 다시 네 그림자를 찾아 나선다.
가을, 만추의 쓸쓸한 길 위를 걸으며
혹시 훗날 네가 나를 기억한다면,
혹시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그때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이 공존할 수 있기를,
나는 마음속 깊이 수없이 기도한다.

사계의 잔상 속에서 나는 오늘도 너를 부른다.
네가 없는 세계의 풍경은 더 선명하게 너 없는 공허를 보여주지만, 그 공허마저 내 사랑의 일부라 여기며
나는 멈추지 않고, 계절의 끝에서 다시 너를 기다린다.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저녁 하늘에 물든 붉은 빛,
그리고 흐르는 강물 위에 번지는 저녁빛까지
모두 네가 남긴 흔적처럼 느껴지며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너에게 가까워지고 있음을 안다.

너가 보고 싶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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