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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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8 17:42조회 24댓글 0유결
아버지의 목소리는 파도에 깎인 돌처럼 둥글었다. "심장 시술 잘 끝났단다. 그래도 네가 한번 내려와 보렴."

그 문장에 이미 불안이 닻을 내렸다. 급히 본가에 도착해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는 그저 오래된 나무처럼,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셨다. 변변찮은 반찬들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할머니가 밥 한술을 뜨실 때마다, 내 눈에는 심장을 꿰맨 실밥들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할머니는 내게 평생 강철 같은 벽이었다. 할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던 날에도, 할머니의 눈동자는 눈물 대신 굳은 의지를 머금고 있었다. 당신의 아픔이나 슬픔은 늘 손주의 안녕을 챙기는 바쁜 일상 뒤에 숨겨져 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전화를 받고 계셨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귓가에 꽂혔다.

"나이 먹으니까 이제 아픈 거 하나하나가 무서워."

숨소리조차 멈춘 순간.
그리고 아주 작고, 아주 깊은 곳에서 끌어낸 듯한 마지막 한 마디가 이어졌다.

"죽는 게 무서운가 봐. 나도."
그 순간, 운전대를 잡은 내 머리와 심장에 쇠로 된 거대한 닻이 깊숙이 가라앉는 듯했다.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내가 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처음보는 약한 모습이였다.

나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감히 그 약한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할머니의 고백은 내가 늘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무너뜨렸다.

나는 그저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처럼, 나의 강철 벽도 조금씩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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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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