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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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9 18:34조회 40댓글 1Othello
우산 위로 빗방울이 조용히 쏟아졌다. 도쿄의 저녁은 붉은 네온사인 속에서 젖어 있었고, 차창에 번지는 빛은 수채화처럼 번졌다.

정류장 지붕 아래, 그녀는 작은 손가방을 꼭 쥐고 서 있었다. 흰색 블라우스는 이미 습기를 머금어 차갑게 달라붙어 있었고, 긴 머리칼 끝에서는 물방울이 또각또각 떨어졌다. 나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면, 필연이라고 불러야 할 만남이었다.

"버스, 언제 오는 걸까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 번 훑어보고, 고개를 들어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아마 지연되는 것 같아요. 비 때문인지."

그녀는 가만히 웃었다. 도시 소음 사이로 그 웃음소리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정류장은 어느새 비를 피하는 몇몇만 남아 있었다. 흘러내리는 빗물, 전차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이 묘하게 한 곡의 음악처럼 어우러졌다.

잠시 후, 나는 손에 쥔 검은 우산을 그녀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같이 쓰실래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산 아래,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이 들어섰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주 미세한 체온이 스쳐왔다.

"오늘따라 도시가 조용해 보이네요."
그녀가 빗속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하... 아마, 우리가 너무 오래 멈춰 서 있어서 그렇겠죠."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나를 스쳤다. 가볍게 포개어진 시선, 그 짧은 시간이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멀리서 버스 불빛이 빗속을 가르며 다가왔다. 우리는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잠깐의 동행은 그렇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조용히 인사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뒷모습만 남기고 차창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우산을 접지 못한 채, 빗속에 서 있었다.

붉은 네온빛, 젖은 아스팔트, 그리고 방금 전까지 우산 아래 스쳐갔던 체온.
도시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빗소리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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