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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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7 15:35조회 54댓글 1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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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눈가를 비추자 잿빛 하늘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 메마른 숨을 거칠게 내쉬던 그가 겨우 눈을 떴다.

주변을 살핀다. 군데군데 형광등이 박힌 천장은 새하얗다. 눈을 옆으로 돌리자, 커튼이 침대를 감싸듯 가려져 있다. 커튼 밖에선 TV 연속극 소리가 났다. 박자에 맞춰 삑 - 삑 - 소리를 내는 산소 호흡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주사기가 꼽힌 팔엔 약이 들어가고 있고, 이마와 심장 근처엔 붕대를 하고 있었다. 환자용 테이블 위에는 십자가와 성경, 그리고 작은 액자가 있었다. 흐릿한 눈으론 그 액자 속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이곳이 병원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한데 이상했다. 몸을 대자로 벌린 채, 손과 발이 꽁꽁 묶여있다.

그는 도대체 왜 이곳에 누워 묶여있는지, 그리고 얼마 만에 깨어난 건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생객해내지 못했다. 이 상황 자체가 단순히 알 수 없는 것뿐이다.

그 사이에 목에선 가래 끓는 소리가 몇 번 났다. 약에 마취제가 섞여 있던 걸까? 아픈 곳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자꾸 기울었다.

순간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을 작은 망치로 강약 조절하녀 때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마취가 풀린 걸까? 아니, 다른 곳은 상관없이 심장만 아팠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환해지기를 반복했다. 천당과 지옥 그 어디도 아닌 현실이었다. 그는 심장 쪽에 손을 갖다 대고 싶었다. 움켜쥐고서라도 이 고동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묶인 손발은 풀 수 없었다. 그때 간호사처럼 보이는 인물이 커튼을 치고 나타났다. 그 뒤에는 몇 명의 간호사와 보호사가 서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이나 해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일 처리를 했다. 한 간호사가 그를 진정시키면, 한 간호사가 약을 더 투여했다. 일 처리가 끝난 그들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딱딱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을 흘려보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병원은 고요해졌다. TV 소리는 조금도 더는 나지 않았다. 천천히 그의 귀에 들어온 건 똑딱이는 시계 시침과 분침들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신이 걸어오는 소리 같았기에 그는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생각했다. 아픔에 반복된 반응, 타인의 시선, 부서져가는 몸이 섞여 한계에 다다랐다. 이젠 견딜 수 없다. 기억조차 남지 않은 지금 도대체 무얼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눈앞에 보이는 건 형광등 불빛 뿐... 그곳에서 생명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창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너무 작아서 귀를 귀울여야 간신히 들렸지만 틀림없었다. 커튼까지 쳐놔 밤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는 눈을 감고 바깥 풍경을 상상했다.

추위가 가신 걸 보니 봄인가 보다. 푸른 하늘은 따뜻한 햇볓이 비출 것이고 새하얀 구름이 흘러갈 것이다. 그는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차 소리,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그리고 좀 더 멀리선 공사장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자신도 여기가 아닌 밖에 있길 소망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기억이 나지 않으니 답답함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불행에 대한 슬픔, 그리고 막연함에 포기. 그는 힘조차도 들어가지 않아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묶인 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워낙 꽉 메어 놔서 풀 수 없었다. 힘을 넣은 곳에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심장이 급작스레 뛰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 힘이라도 쓰려는 듯...

그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잠시 허리가 들렸다 그대로 침대에 처박혀 늘어져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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