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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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6 23:30•조회 61•댓글 1•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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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것이 끝은 아니니까.





















맑게 개어있던 청색에 햇빛 익어가는 하늘이 일렁이는 아래, 아직도 혹독한 겨울이 남아 있었다.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무색히 흘렀을 지언정 지난 날은 제 흔적을 남기고서 떠난다. 걸음조차 많은 이가 알지 못하도록 급히 떠나가는 이들의 오랜 특징이었다. 모습은 감추며 저의 존재는 알리고 떠나는 존재들은 수두룩하다.

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회억에 잠기고.

너에게도 그 특징은 배어있던 모양이었다. 존재는 각인 시키고서, 남긴 건 흔적만이 전부였던 너는 그런 이들에 해당되어 있었다. 알고 있니? 너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 뿐이라는걸. 그저 지나치다 한 번 떠올리는 사람들은 가득하나 너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던 모양이야. 너는 그토록 남들의 추억 속에 살고 싶어 했는데.

일렁이는 하늘 아래에 고요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잔잔하고 울리며, 기억하려는 피아노의 연주 소리가 음악실 안을 깊은 골 안까지 파고든다. 너의 음표를 찾으려 걷는 나의 연주였다. 네가 좋아했던 연주를 따라해본다. 인기 피아니스트의 완벽히 흐르는 선율을 어설프게 흉내낸다. 이것이 내가 너를 기억하는 방법이야. 고개를 돌리면 네가 있을 것만 같아, 건반을 누를 때마다 얕은 네 향기를 매만지는 기분이었다.

높은 음을 연주하면 네가 수면 위로 함께 떠오를 것 같다가도, 다시 낮은 음을 연주하는 순간이 되면 수면 아래로 잠기는 것만 같았다. 너를 기억하고 새기려던 연주인 탓일까 온전히 네가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너를 온전히 끌어올려주기에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나 봐.

피아노 건반에서 이내 마지막 음이 공기에 울리는 소리를 냈다. 연주 소리가 막을 내렸다. 음악실이 언제 피아노의 연주로 가득 찼었냐는 듯 고요해지며, 공기조차 숨을 쉬지 않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모든 소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수면 아래에 잠겨버렸다. 고개를 돌리니 너의 모습은 눈동자에 담기지도 못했다. 그저 음악실에 놓인 여러 악기들이 배열을 갖추어 제 자리에 미동도 없이 멈춰있었다. 허상이라도 꾸고 있었던가. 눈을 비비고 나니 곧 이곳이 현실인 것을 직감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진 손이 감각을 느끼며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는 곧 의자에서 몸을 떼어 일어났다. 창가를 향해 뒤를 돌아보니 하늘은 노을에 익어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의 바람은 쌀쌀맞지 않게 굴었다. 선선하니 오히려 나의 기분을 구름 위라도 올려줄 것만 같다는 환상을 느꼈다. 너에 대해 회억하던 시간들이 경험에 묻히며 저의 존재를 감출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곧 다시 저의 존재는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 짐작했다. 너는 나를 어디로든 데려가곤 했잖아, 그렇지?

하늘을 바라보며 그 풍광에 너를 다시 회억한다. 그 하늘은 내게 그에 맞는 대답은 들려주지 않았으나 꼭 구름으로 미소를 그려놓은 것 같아 나도 구름을 흉내냈다. 어설픈 모양새였다. 지나온 길을 따라 음악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또 다시 연주를 들려주러 올게. 너를 언제나 내 안에 아로새길게. 지나가는 순간에 너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모든 순간의 너를 품은 것처럼.


모든 순간의 네가 앞으로도 숨을 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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