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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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8 20:52조회 49댓글 1캐일
낙엽이 완전히 지기 전의 오후 햇살은 유난히 연하고 희미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갓 나온 따뜻한 캐모마일 차 두 잔에서 얇고 부서지기 쉬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머그잔을 감쌌다. 전해지는 온기는 따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차가운 늦가을의 공기를 밀어내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네가 방금 꺼내 놓은 이야기가 내 귓가에 아직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다. 네가 좋아하는 음악의 선율, 꿈꾸는 미래의 색깔 같은 것들.

네가 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김을 들이마시는 모습이, 마치 처음 맡는 듯 순수했다. 네 표정은 늘 그렇듯 담백했지만, 그 들숨에 나는 네가 느끼는 모든 행복을 함께 공유하는 기분이였다.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너머로 흩날리는 마지막 단풍잎들. 세상의 아름다움은 늘 마지막이라는 이름 아래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는 듯 했다.

우리의 관계도 그럴까. 이 풋풋하고 예쁜 순간이 끝나버릴까봐, 나는 네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망설였다.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움은 늘 찰나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내가 쥐고 있던 머그잔을 네가 살짝 건드렸다. 실수였는지, 혹은 의도였는지 알 수 없는 아주 짧은 스침이었다. 머그잔의 몸체가 부딪히며 작은 도자기 소리가 났다. 짤랑-

우리의 청춘은, 아마도 이 머그잔 위의 김처럼, 곧 사라질 테지만, 그 사라지기 직전의 온기와 향기만큼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에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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