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름은 온통 너였다. 5년 전의 그 여름도, 지금도 변함없이 너는 내 여름에 가득 차서 눌러 붙었다. 질퍽한 껌처럼.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된 건 아마 5년 전 여름일까. 내가 병신처럼 굴다가 새 삶을 살기 위해 전학 온 청유 중학교는 정말 바보들이 모여 있었다. 어디 끌려가서 존나 처맞든, 사기를 당해 지갑이 텅텅 비든, 엉엉 울고 금방 잊어버리는 그런 곳이였다. 여기는.
바보 중에는 너도 있었다. 맑게 웃는 너를 보며 나는 어딘가에서 본 소설처럼 심장이 간질거리지도,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서글펐다. 내 사랑은 슬펐다. 영원히.
질퍽질퍽열병
이곳에 온 이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끝없이 이어지는 과거의 유리 조각이 내 온몸을 찔렀다. 가슴까지도. 그 꿈 끝에는 네가 서 있었다. 여전히 맑게 웃는 네가.
그날 이후로 계속, 계속 그 꿈을 꾸었고 깨어날 때마다 열은 더 올라 있었다. 지옥같은 열병의 시작이었고 열병은 장마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먹구름이 개고, 하늘이 청아하게 빛나던 날. 열이 말끔히 내렸고 다시 등교를 한 그날에 불구덩이 사이의 네가 학교에서 나를 반겼다. 어쩌면 나를 불구덩이로 불렀을지도 모르는 네가. 어쩌면 그날이 시작이었다.
너를 사랑한 게.
해가 지날수록 내 사랑의 더 깊어졌고 사라질 줄을 몰랐다. 매년 나는 더 깊은 불구덩이에서 너를 만났고 더 높은 열을 마주했다. 이미 너를 사랑할수록 내 몸이 더 타오르는 걸 알고 있는데 그만 사랑할수가 없었다.
너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알려줘.
기어이 이 지독한 열병을 올해까지 끌고 왔다. 내년에는 너를 잊어볼게. 너를 지워볼게. 너는 이미 나에게 녹아 내려 분리할 수 없는 형태가 되어 버렸지만.
개새끼야, 푸른 물과 검은 물이 섞이면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아? 검은 물에서 푸른 물을 없애려면, 검은 물도 함께 사라져야 해. 첨벙청벙 헤엄치며 사라져야 한다고.
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첨벙····.
그럼 결국 푸른 물만 남겠지.
그래 너만 남아, 개새끼야.
청유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열은 더 높아졌고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신경성 열병이기에 -나만 아는 사실이다.- 비가 그칠 쯤이 되면 열은 잦아 들었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존나게 사랑하고 있었다.
누가 나만큼 널 사랑해? 15살에 네가 사귄 축구부 선배? 17살에 너랑 썸 탄 7반 차은우 -존나존나 잘생겼다는 뜻- ? 그것도 아니면 설마 폭탄? 그럴리가.
달아오른 몸이 축축하게 젖는다.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나는 눈앞이 어질한 이 순간에도 너를 바라고 있었다. 개새끼야, 내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하나 봐.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죽도록 아플리가 없잖아. 너를 사랑하는 게, 왜 내겐 병이 될까.
- 누나들, 사랑해요////
- 웅웅이하나누나도존나따랑해!!
- 하시발사람이어떻게이렇게생겼지??!?
개새끼는 굳이 내 병실까지 와서 아이패드를 키고 위버스 라이브를 보고 있다. -위버스를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내 옆에 있는 개새끼를 가리키겠다.- 화면에는 미모의 금발 왕자님이 대한민국 오천만 누나들을 꼬시고 있었다. 이한이랬나?
- 너는 남친이 몇 명이냐?
- 누나는남친이하니하나밖에없···
- 아 끼어들지 마;
남친이라는 사람 목소리도 구별 못하냐? 진지하게 지능이 개새끼만도 못하다. 걔들은 냄새라도 잘 맡지. 아이패드는 아무리 냄새 맡아봐야 이한씨 냄새가 나지 않겠지만. 개새끼는 아마도 400번째 남친이 든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였다.
나는 개새끼를 무시하고 핸드폰 화면을 켰다. 배경화면은 우리 무리 -그냥 같이 노는 짐승들.- 사진이었다. 그중 당연히 개새끼도 있었다. 이제보니 개새끼는 내 옆에 서있었다. 이게 언제더라? 작년인가.
기말고사가 끝나고 다같이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다. 개같은 청유 고등학교 교복은 버리고 핑크 계열 -수컷새끼들이 죽어도 싫다고 했지만 개새끼와 더불어 모든 공주분들이 핑크가 아니면 안된다고 지랄을 해서.- 교복을 맞춰 입고 놀이기구 조지기 전, 헤어 세팅 완소 퍼펙트 상태로 찍은 단체사진 이었다.
존나 재밌었는데, 하고 빌어먹을 회상에 잠겨있던 그때 개새끼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왜 장마만 되면 아파? 이런.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온 농담이 나를 안심시켰다.
- 벌써 늙었냐?
절대 널 사랑한다고 말 못하니까.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장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