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계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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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15:47조회 64댓글 2김마요
유독 맑았던 그날 아침을 잊지 못하겠지.
영원히 간직하겠지.

•••

언제나 혼자였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너.
너는 공부도 잘 하고, 얼굴도 예뻐서 인싸 그 자체였지.
나 같은 개찐따를 인사해줄 정도면 넌, 얼마나 착했던 걸까.
매서운 아이들의 눈빛을 뒤로 하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 너.

그래, 너.
내가 미안해.

너의 환한 미소를 봐서였을까, 그날 이후로 난 그냥 좀 달라졌어.
너가 궁금했고, 친해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지.
은근슬쩍 화장실을 갈 때 널 지나쳐 가고, 급식도 근처에 앉아 먹었어.
너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건 그래서였을까?
여느 평범한 하루였잖아, 난 점심시간 공터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을 투영하고 있었고.

- 안녕, 뭐해?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틴트를 바른 듯한 빨간 입술.
너였어.

그냥 쉬고 있어.

- 나도 힘들었는데 잘 됐다. 여기 앉아도 돼?

고개를 수줍게 끄덕이자 벤치 한쪽에 걸터앉았지.
그렇게 길고 고요하지만 설렜던 시간을 보냈어.
너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 나 이따 도서관 갈 건데, 책 추천해주라. 너 책 많이 읽잖아.

- 어제 혼자 올영 가서 틴트 사려는데, 어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너는 그렇게 한참을 수다를 떨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정도로 대답을 대신했지.

딩동댕동.

- 잘 가, 내일 봐.

그렇게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함께 보낸 우리는 점점 더 친해졌어.
말을 잘 못 하던 나도 너 앞에서만큼은 실컷 어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수 있었지.

어느 수업시간이었어, 내 기억으론.
- 체육 시간에 짝지어서 활동할 거니까 서로 짝 찾아보세요.

씨, 이런 거 싫은데.
이런 게 소위 소외되는 아이들의 운명이다.
서로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홀수 무리의 아이들 사이.

- 가위바위보!

시발, 운 더럽게 안 좋네. 걔랑 하기 싫다고.

그럼 뻘쭘한 얼굴로 그 아이 옆에 선다.
부루퉁한 입술과 날 흘겨보는 시선을 꾹 참으며.
올해는 또 누가 그 상대가 되려나.
그때였지.

- 나랑 하자! 괜찮아?

그날의 체육 시간은 정말 인생 최고였어.
아, 그렇지, 인생...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체육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너의 찬란한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더니 얼굴이 창백해져있었어.

선생님, 얘 얼굴이 창백해요...

- 빨리 보건실 데리고 가! 괜찮아?

보건실에 가면 다 해결되리라 믿었어.

- 괜찮아, 단... 순 감기일... 거야...

그땐 몰랐지.
보건 선생님은 여기선 안 된다고, 큰 병원에 가야한다고 하며 함께 가라고 했어.
급하게 전화를 걸어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지.
들것에 놓인 널 보는 순간 세상이 뿌얘졌어.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친구잖아. 할 수 있어. 괜찮아.
애꿎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세뇌를 하던 그때 흰 가운이 눈앞에 들어섰어.

- 이야기 좀 하셔야겠습니다.

- 친구 분이시죠?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한데, 아무래도 심각한 질환인 것 같습니다. 선천적인 질환인데 지금에야 증상이 나온 것 같아요. 오래 못 버틸 것 같습니다. 시한부... 입니다.

시한부. 그 세 글자가 내 마음에 콕 박혔어.
뭐라고?
너가, 죽는다니.

•••

그 질환은 약 10만 명 중 한 명에게만 발현되는 희귀 증상이었어. 어렸을 땐 잘 버티다가 대략 청소년기 쯤에 심각한 발작 증상이 일어나고, 그러다 죽는 것.

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어. 면회 시간에 맞춰서 본 너는...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어.
온몸에 여러 링거 줄과 패치가 부착되어있고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달려있었지.
의식도 곧 희미해질까봐 두려웠어.
널 잃을까봐.

- ...난... 괜찮... 아...

그 한 마디에 세상이 푸르게 변했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10분동안 펑펑 울었어.
바닥에 물이 고일 때쯤, 옷이 다 젖었다는 걸 깨달을 때쯤 나는 겨우 눈물을 멈추고 콧물범벅인 얼굴로 다시 네 예쁜 얼굴을 쳐다봤어.
차라리 나였다면 어땠을까, 넌 무사하고 내가 그리 아팠더라면...

-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내 장례식... 에서는 웃어... 줘...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로 날 대하던 너는 그렇게 날 떠났어.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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