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5 01:37•조회 81•댓글 6•한고요
봄은 오래도록 나를 품어줄 것처럼 다정했으나,
그 품은 의외로 성정이 얄궂어 어느새 이별을 서둘렀다.
온화하던 햇살은 금세 날을 세운 빛살로 변해 유리창을 쪼개고, 도시의 오피스 거리는 여름의 기운에 절여져 네온사인조차 숨을 몰아쉬는 듯 번쩍였다.
그날 밤,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별들은 부드럽게 흘러내려 마치 검은 비단 위에 쏟아진 은가루처럼 도시를 덮었다.
잠은 그림자처럼 멀찍이 물러나 있었고, 그 틈으로 네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스며들었다.
“바람, 맞으러 가자.”
네가 이끄는 발걸음을 따라, 우리의 여름은 그 오피스 거리의 끝까지 이어졌다.
저녁 무렵 스친 소나기의 잔향이 바람에 섞여 있었고, 아스팔트 틈새에서 솟아오른 흙 내음은 묘하게도 오래된 기억을 두드려 이유 없이 목울대를 간질였다.
한 여름 밤을 노래하라는 듯 불러댔고.
차창 밖 세상은 끝없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푸른 가로등 불빛이 물결처럼 흘러내려 우리의 뺨을 스쳤고, 신호등의 붉은 빛은 순간마다 우리의 숨을 덮었다.
그 위로 네 웃음이 아지랑이처럼 번져, 세상의 모든 소란을 온화하게 감싸안았다.
우리는 운명을 약속받은 연인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시 속에 영원히 각인될 주인공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서로의 계절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경적마저 한여름의 심장 박동처럼 뜨겁게 울렸고, 모든 색채와 온도가 살아 있는 듯이 시간조차 숨을 멈춘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아, 떠나지 마.”
너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 말은 부드러운 명령이자, 간절한 기도였다.
부서져도 좋을 추억, 흩날려도 지워지지 않을 밤이
지금 우리의 손 안에 있었다.
나는 안다.
언젠가 이 계절이 발끝에서 흘러내릴 때, 우리는 슬퍼지기 전에 다시 이 길 위에서 서로를 찾을 것이다.
그 여름밤, 우리는 서로를 노래했다. 별빛을 건너, 바다를 건너,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타오르던 여름의 계절을 건너.
그리고, 그 노래는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한여름이 품은 모든 낭만이 오래도록 우리를 비추고 있었으니, 또 있을 테니까.
_
step by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