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8 19:44•조회 45•댓글 11•한지우
엄마,비가 와요(단편소설)
-By 한지우-
은하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작고 따뜻한 손, 조용한 숨결, 그리고 그 눈빛.
말은 없었지만, 은하는 분명히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말보다 더 많은 걸 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은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를 부를 때,
은하는 그저 조용히 엄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의사들은 말했다.
“자폐 스펙트럼입니다. 언어 발달이 어려울 수 있어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은하를 믿었다.
“이 아이는 마음으로 말하는 애예요.”
은하는 소리에 민감했다.
시끄러운 곳에선 몸을 웅크렸고,
낯선 사람 앞에선 눈을 피했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달랐다.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은하는 비를 좋아하네. 비가 은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
시간은 흘렀고, 은하는 여섯 살이 되었다.
말은 여전히 없었지만,
엄마와의 교감은 점점 깊어졌다.
손을 잡으면 꼭 쥐었고,
엄마가 아플 땐 조용히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은하를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심장이 약해졌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은하는 처음으로 엄마 없는 밤을 보냈다.
창밖엔 비가 내렸다.
그날 은하는 처음으로 울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끝없이.
병실에서 엄마는 은하를 그리워했다.
은하가 잘 지내고 있을까.
무서워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걱정 속에서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병실 문이 열렸다.
은하가 들어왔다.
작은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다.
엄마는 놀라며 말했다.
“은하야… 어떻게 왔어?”
은하는 조용히 엄마 품에 안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엄마… 비가 와요. 같이 봐요.”
그 말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은하를 꼭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한 마디.
그토록 믿었던 사랑의 증명.
그날 이후, 은하는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단어는 아니었지만,
“엄마”, “비”, “꽃”, “사랑”
그 단어들은 은하가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엄마는 깨달았다.
말은 늦게 왔지만,
사랑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By 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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