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은 도시 전체를 은밀하게 달구며, 달콤하고 묵직한 열기로 숨을 쉬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햇빛은 유리잔 속 탄산이 부서지듯 반짝이며 솟구쳤고, 가로수의 잎맥조차 사탕의 결정처럼 번들거리며 흔들렸다. 버스정류장 차양 밑 그늘은 꿀처럼 눅진했지만, 네가 흰 셔츠 소매를 무심히 접어 올린 채 다가온 순간, 그 모든 더위는 고요히 풀려내렸다. 네 모습은 여름 속에 기이하게 피어난 백합 같았고, 나는 그 향기에 홀리듯 서 있었다.
우리는 낡은 극장을 향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세월에 바래 잿빛으로 갈라진 간판과 오래된 포스터는 마치 잊힌 꿈의 흔적처럼 비틀거렸으나, 네 옆에서 나는 마치 비밀스러운 서정시의 행간을 따라 걷는 듯했다. 작은 매표소 앞에서 너는 팝콘 대신 레몬 사탕을 고르고, 그 껍질이 찢어질 때마다 공기 속에 퍼진 새콤한 향은 첫사랑의 주저와도 같은 서늘한 감각으로 가슴을 간질였다. 뙤약볕이 두텁게 내려앉은 한낮의 여름조차 그 순간에는 무대의 장막처럼, 우리 둘만을 비추는 은근한 조명에 지나지 않았다.
극장 안은 마치 계절로부터 도망쳐 들어온 은신처 같았다.
빛이 바랜 벨벳 의자는 오래된 기억의 품처럼 우리를 부드럽게 감쌌고, 스크린 위로 스쳐가는 장면들은 희미한 파편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내 시선은 오히려 네 옆얼굴에 사로잡혀 있었다. 은빛 스크린 속 연인들의 서툰 손길보다, 네 눈동자에 담긴 빛이 훨씬 더 진하게 나를 흔들었다. 내 심장은 포도알이 터지듯 팽팽히 부풀어 있었고, 그 떨림은 장마 뒤 첫 햇살처럼 투명하게 번져나갔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바깥의 저녁으로 걸어 나왔다.
햇살은 이미 황금빛으로 풀리며 기울고 있었고, 극장 벽돌 틈새로 흩날리는 먼지는 마치 여름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꽃가루 같았다. 너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지?” 라고 물으며 가볍게 웃었고, 그 웃음은 노을빛에 잠긴 구름처럼 부드럽게 내 마음을 적셨다. 나는 대답 대신 네 손을 잡았다. 그 손바닥에 고인 온기와 땀의 미묘한 결은 계절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그날의 저녁 바람은 아직 여름의 숨을 품고 있었지만, 어딘가 가을의 가장자리를 스치듯 서늘한 결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걸었고, 발밑의 그림자가 두 줄로 길게 겹쳐졌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그 단순한 리듬 속에서 나는 문득,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오래된 필름처럼 바래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느꼈다. 너와 나, 여름과 노을과 레몬 사탕의 향기가 한 겹씩 포개져, 기억의 한 장면으로 천천히 인화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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