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3 22:48•조회 15•댓글 0•검은
“내가 나비꿈을 꾸다가 깨어났는데, 내가 정말 인간이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명한 중국의 고대 철학자 장자가 남긴 말이었다. 기나긴 꿈에서 드디어 깨어났다가 다시 꿈으로 가는 기분은 어떨 지 S는 궁금해 했었다. 물 속에서 계속 잠수를 했다가 겨우 수면으로 뛰쳐 나왔는데,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 속에서 축축해진 살이 다시 햇빛을 만나서 타오르는 그 기분을 잠재워야 한다니. 그리고 계속 참아야 한다니.
S는 이걸 늘 궁금해 했다. 따뜻한 우유 거품이 살짝 흐를 듯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회색 뻣뻣한 신문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그걸 읽는 S의 몸은 너무나도 뻣뻣해, 신문을 연상 시켰다. 부드러움보다는 뻣뻣함, 곡선보다는 직선, 유연함보다는 긴장, 등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들을 지녔다. S는 몸의 뼈들이 툭 튀어나와 골판지로 된 해골 위에 피부만 덮은 듯했다.
S는 신문을 읽은 뒤 일을 하러 갔다. 분주하면서도 정갈한 사람들의 걸음걸이, 정해진 경로들을 정해진 속도로 가는 지하철, 무의미한 경적들을 울리는 회색 차들이 이 도시를 대변했다.
S의 회사는 더욱 더 분주했다. 분주하면서도 경쾌하지는 않은 그 회사는 S가 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그 일은 거짓이 난무하지만 결코 그걸 드러내지는 않았다. 할 일이 많아 바삐 움직였지만 결코 밝지 않았다. 마치 느와르풍의 흑백 무성 영화를 쓰는 느낌이다.
S는 고요를 느끼며 자신의 고요한 사무실로 갔다. 어두운 사무실로 가는 길은 S의 골판지 같은 몸으로 가기는 약간 버거웠다. 그 버거움조차 회사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X 존재 처리실”
검은색 금속 간판은 그곳이 그녀의 사무실임을 드러냈다. 그림자만이 유일한 굴곡이었다. 비록, S의 사무실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모두가 S가 X의 모든 것들을 처리한다는 걸 안다. X를 만드는 모든 것들마저도. X의 모든 아름다운 세상은 S에 의해 무너졌다.
S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X를 보았다. 흰 조약돌 같은 얼굴, 앵두가 약간 숙성된 듯한 입술, 그리고 장미빛 뺨까지. 재밌는 건 X의 장미빛 뺨은 X의 뺨이기에 장미빛으로 보였다. S가 비슷한 색의 뺨을 가졌어도, S의 뺨이면 핓빛 뺨이 된다.
S는 기계적으로 감각 하나도 느끼지 않는 듯 X의 머릿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세계에서는 인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기계가 이미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오직 모든 걸 통치하는 국가만이 이를 관리한다. S는 기계로 X의 머릿속을 보았다. 웃는 친구, 색이 가득한 키즈 카페, 중학생이 가지는 첫사랑, 분홍, 노랑, 하늘, 같은 여러 색깔들, 아름다움, 행복, 등이 뒤엉켜 있었다. 이것들을 전부 뭐라고 부르면 좋으려나, S는 궁금해 했다.
이제 S는 더 중요한 작업들을 행했다. X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일. X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송두리째 바꾸고 다시 인생을 시작 시키는 일. 끔찍해 보였지만, 명령은 어쩔 수 없었다. S는 이제 슬슬 기억들과 감정들, 그리고 느낌들을 삭제 시키고 있었다. 아마 내일 쯤이면 기억들을 전부 없애고 X의 인생을 다시 쓰는 게 가능할테다. 그 내일을 기약하며 S는 X의 감정들과 기억들을 삭제 시켰다. 행복? 무너져 버려. 친구를 향한 믿음? 친구라는 존재가 뭐니. 사랑? 무의미해. 계속 없애갔다. 없애갔다. 없애갔다. 그의 기억들도 슬슬 없앨 때가 왔다. 친구와 같이 들판에서 뛰어나 온 경험? 필요 없어. 중학교 1학년 때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한 일? 차일 바에는 고백 하지 마. 계속 사라져 갔다. 기억도 느낌과 감정을 따라 사라져 갔다.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은 금세 간다. 벌써 시침이 정갈하게 12를 가리키자, S는 다시 집으로 갔다. 집은 매캐한 화학 냄새를 풍겼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 냄새는 곧 사라졌다. 모든게 다시 깔끔해 지는 순간이었다. S는 이부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하며 수면제를 입으로 넣었다. 이제 잠이 들거야, S는 생각했다. 그렇게 S의 눈은 슬그머니 감겨졌다. 눈은 실밥으로 묶인 듯 떨어지지를 않았다.
다음날, 그녀는 어김 없이 출근을 했고, 사무실로 가서 기계를 찾았다. 기계는 물어보았다.
“기억 및 감정 느낌 전부 제거. X의 인생 프로그래밍을 실행할까요?”
S는 ‘예‘를 눌렀다. 그렇게 X의 인간의 꿈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