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해가 밝아왔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선, 센터 밖으로 발을 디뎠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는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었다. 센터의 텃밭 너머로는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밝은 태양과 잔잔하게 요동치는 물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층 편해졌다. 탐험대를 시작하고 나서, 어딘지 모를 곳에서 느껴지는 향수 때문에 생각에 잠기는 일이 늘었다. 바닷 속 도시를 둘러보고 있으면 문득 구슬퍼졌다, 내 것이 아닌데 낯익은 기억이 떠올랐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겹쳤다. 내가 살지 않던 시대. 필름이 끊긴것 처럼 생각나는 기억은, 내 일상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요즘은 유안이와 만나는 일이 줄었다. 물론 내가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도 한몫했지만, 유안이는 너무 바빠보였다. 나와는 다른 유안이는 항상 빛나서,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필연적인 일이었다. 따스한 햇볕을 거절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유안이가 웃을때 휘는 눈꼬리를 보면, 좋아할 수 없지 않았다. 나의 세상엔 물과 유안이 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하나씩 내 곁을 떠난다.
아-.
고작 좋아하는 게 한두 개 사라진다는 걸로 울적해하는 건 이제 그만둬야겠다. 이 넓은 세상엔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항상 존재할 테니까. 적어도 물과 바다-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윤도해. 이름 석자의 의미를 생각했다. 바다를 다스리는 길. 나는 문득 내 이름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졌다. 누군가 지어줬을 내 이름. 왜 하필 바다에 관한 이름이며, 나는 왜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있는지. 이런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어느샌가 밝은 새벽이 찾아온다. 무수히 넓은 지구와, 무한히 넓은 우주. 바다에서 숨 쉴 수 있는 건 나뿐인가? 만약 신이 있다면, 당장 찾아가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은 존재할리 없으니 나 자신에게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나를 콕 집어 숨 쉴수 있게 한 이유를.
탐험을 하기 위해 들어간 물속은 여전히 시렸다. 물의 온도는 그때그때 바뀐다. 바뀌는 이유와, 주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우울한 날에는 결정타라도 치는듯 물까지 차게 느껴진다. 은근히 나를 소외시키는 세상은, 딱히 좋다곤 말할 수 없겠다. 그런데 나는 이 곳 이외엔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저 버텨가듯 하루를 살아간다. 아슬아슬하게 살아갈 생각을 하면 눈 앞이 아득해진다. 발을 잘못 내딛으면 떨어지는 세상에서, 바다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집이 되어줬다. 그런 바다에 있으면, 나는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다는 내게 친구였고 사랑이기도 했다. 나는 바다에서 살아남은게 아닌 바다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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