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미체(美體) 연극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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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1 00:34조회 52댓글 15eo1z
□ SOU



-제 1막-



ㆍ장면 1

ㅡ ‘나’의 집 안.

어두운 무대. 가운데 조명이 ‘나’를 비춘다. 무릎 꿇은 채, '나'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나:

(독백)

꽃이 폈다.

내 목구멍 안에서.

뜨겁고 끈적한 꽃잎이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꿈틀거린다.

입을 열면, 향기가 아니라 열화된 색이 흘러나온다.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너무 강렬한 색은 고통의 배다른 형제다.

(거울 앞에서 천천히 입술을 꿰매기 시작한다. 실은 붉은색.)

나:

(독백)

숨을 쉬기 버거워서, 나는 입술을 꼬맸다.

(멈추며)

이제 너는, 꽃이야.


ㆍ장면 2

ㅡ 거리

무대 뒤쪽이 밝혀지며 천천히 '거지'가 나타난다. 검은 커튼을 드리운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대 오른쪽.

검은 벨벳 커튼 앞에 서커스복을 입은 거지가 기괴한 자세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가가 그를 흥분하며 촬영한다.

사진가:

(외침)

추해! 너무 추해!

(셔터 소리와 함께 계속 외친다)

‘나’가 무대 중앙을 지나며 그 장면을 목격한다. 거지와 눈이 마주친다.

(음향: 숨죽인 긴 정적)

거지는 나와 입을 번갈아 응시하다 입을 연다.

그의 입 속에서 또 하나의 입이 열린다.

무대 위 조명이 그 입 안을 강조.

나:

(독백)

그는 입속에 또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었다.

심해어의 인체화.

지렁이빛 잇몸,

기생충 같은 핏줄,

그리고 송곳니로만 이뤄진 이빨들.

이것이 그의 인사법인건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의 입속을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푼다. 실이 끊기며 피가 뚝뚝 떨어진다.

거지는 현혹된 듯 천천히 다가와 ‘나’를 잡아채어 무대 뒤로 끌고간다.

무대가 서서히 암전된다.


ㆍ장면 3 

ㅡ 거지의 굴 속

거지가 무대 왼편으로 ‘나’를 끌고 나가면, 설치물이 교체되고 무대 뒤편이 밝아진다.

조명은 약간 주황빛을 돈 노란색. 굴 속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굴은 흙빛 벽과 시든 꽃들, 건조한 풀잎들로 꾸며진 작고 낮은 공간.

거지: 마른 잎사귀들을 치워 자리를 만들고 '나'를 앉힌다. 그리고 동굴을 따라 맴돌다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나’의 입을 벌린다. 입 속의 팬지꽃이 조명으로 강조된다.

(거지가 손을 뻗어 팬지꽃을 뽑는다.)

'나': 헛구역질을 하고, 목을 잡은 채 가쁜 숨을 내쉬다가, 이내 기절한다.

('나'가 쓰러졌을 때에 맞춰 무대 조명이 빠르게 꺼진다.)



--제 2막--


ㆍ장면 4

ㅡ ‘나’의 집 안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볼이 부풀어 있고, 입을 여니 입 안엔 다시 팬지꽃이 가득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무대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응시한다.

나: (호흡이 어려워 고개를 뒤틀며 입을 벌리고
팬지꽃들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매만진다.)

‘나’는 화가 난 채 다시 거리로 나간다. 사진가와 거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거지가 '나'를 발견하고 짐승 울음소리를 내며 반긴다.

사진가가 이에 뒤돌아 나를 발견한다.

사진가:

(표정을 구기며)

저건 너무 아름다워.

저런 피사체로는 관심을 끌 수가 없단 말이야.


거지는 ‘나’를 알아보고 환희에 찬 몸짓을 하며 다가온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아끌며 무대 퇴장.

사진가는 무대에 홀로 남겨진 채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ㆍ장면 5

ㅡ 극장 안

무대 뒤에는 붉은 벨벳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가운데는 조명이 원모양으로 비추고있다.

무대 맨 오른쪽,

거지가 '나'를 무대 중앙으로 밀친다.

조명의 원 안으로 '나'가 들어오자,

관객들의 환호하는 소리가 나온다.

오른편의 조명이 꺼지고,

거지는 어둠에 가려진다.

나:

(여전히 고개를 꺾은 채 거지를 바라보며)

거지는 동경의 눈빛이었다.

그가 입모양으로 묻는다.

미가 무엇이냐고.

(다시 관객을 바라본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민하다가

보기좋게 죽을 준비를 한다.

입을 닫고 목을 잡은 채

고통스럽게 질식한다. 팬지꽃이 뽑혔을 때처럼.

'나'가 쓰러지고 무대는 빠르게 암전된다.

천천히 무대 중앙의 조명이 켜지고, 쓰러진 '나' 의 입에서 떨어진 꽃잎들을 비춘다.

커튼이 서서히 닫히며 연극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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