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편의점은 인간보다는 유령에게 더 어울리는 장소였다.
형광등은 지나치게 희었고, 냉장고는 쉬지 않고 웅웅거렸으며, 진열대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어딘가 현실에서 반쯤 밀려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의 편의점을 좋아했다.
아무도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삼각김밥 하나와 탄산수를 계산대에 올려놓자 아르바이트생이 바코드를 찍었다.
삑.
삑.
삑.
그 기계음은 꼭 사람의 하루가 폐기되는 소리 같았다.
“봉투 필요하세요?”
나는 대답 대신 계산대 옆에 놓인 라이터들을 바라봤다. 투명한 플라스틱 안쪽에 든 싸구려 가스가 형광등 빛을 받아 희미한 바다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저 안에 아주 작은 영혼 하나쯤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닥.
점원이 시험 삼아 라이터를 켰다.
순간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짧은 불꽃이 부러웠다.
누군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단 한 순간만이라도 저렇게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게.
편의점을 나오자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은 없었다.
하지만 뛰고 싶지는 않았다.
비를 맞은 도시는 꼭 물속에 잠긴 수족관 같았다. 자동차 불빛들은 흐릿하게 번졌고, 간판들은 젖은 네온사인처럼 허공에서 녹아내렸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자 신호등의 초록빛이 빗물 웅덩이 안에서 흔들렸다.
나는 그걸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의 삶도 저럴까.
분명 앞으로 나아가라는 색인데, 막상 물에 젖어버리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
빨간 불로 바뀌었다.
웅덩이 속 초록도 함께 사라졌다.
그 순간 이유 없이 서러워졌다.
정말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세상이 잠깐 나를 혼자 두고 먼저 늙어버린 것 같은 날.
나는 젖은 골목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신발 안쪽에서 양말이 질척거렸다.
주머니 속 이어폰은 이미 빗물에 젖어 한쪽이 죽어 있었다.
왼쪽만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걷자 꼭 세상이 반쪽짜리 같았다.
노래의 절반은 빗소리에 잠기고, 나머지 절반은 심장 안쪽으로 가라앉았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정확히 얼굴이 생각난 건 아니었다.
대신 그 사람과 걷던 밤공기의 온도가 기억났다.
사람은 결국 얼굴보다 온도를 기억하는 생물인지도 몰랐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비가 잔뜩 고인 하수구를 내려다봤다.
검은 물 위로 형광등 빛, 자동차 불빛, 신호등 불빛, 편의점 간판 불빛 같은 것들이 뒤엉켜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외로움이라는 건 텅 빈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이 마음속에 남아 썩어가는 상태라는 걸.
잊지 못한 장면들.
끝나지 못한 대화들.
삭제하지 못한 사진들.
다 마시지 못한 캔맥주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사람 안쪽에서 천천히 눅눅해진다.
나는 쭈그려 앉아 하수구 위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빗물이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렇게 축축하고 어설프고 불완전한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워서.
나는 젖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턱 끝에서 떨어졌다.
도시는 여전히 환하게 젖어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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