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와 메론 머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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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30 10:59조회 89댓글 1천진
단편 / 묘사 주의


이것은 소년 A의 불쾌한 저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습니다. 단지 장마 탓에 쏟아질 듯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불행하게도 소년 A는 하다못해 편의점 비닐우산 하나조차도 사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죠. A는 쫄딱 젖어버렸습니다. 무거운 짐짝 같은 가방을 메고 A는 묵묵히 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기이하게 그날은 유독 고요했습니다.

A는 걸었어요. 그의 집이, 혹은 쉴 수 있는 어딘가가 나올 때까지. 날씨는 무척이나 습해서 익사할 듯했습니다. 아주 더운 바다 같았달까요. 생생히 기억납니다. A는 처음에 집으로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A의 팔뚝에는 그의 아버지가 어젯밤에 남긴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솔직히. 누가 그런 집에서 버틸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A의 집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널브러져 잘못하면, 아니 발을 내딛기만 해도 발에 깊이 박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식탁에는 썩어버려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꼬인 음식물이 방치돼 있고 벽 곳곳에는 누수가 생겨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곰팡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산다고 표현할 만한 게 아니었어요.

하여튼, A는 그날 그가 사랑하던 개울로 갔습니다. 근처 백 미터 이내로 작은 오두막이 있고···. 아, 맞습니다. 제가 종종 자리를 내어주곤 했습니다. 내 오두막이었어요. 이제는 너무 낡아버려 종종 개울로 나들이 온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정도였습니다. A는 자주 내 오두막에 왔고, 꽤 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A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여도, 아무리 궂은 것들에게 괴롭힘 받아도 울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내가 보는 앞에서는 말입니다.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년입니다. A는요. A는 유달리 말수가 없고 어른스러운 소년이었습니다. 사실 소년이 어른스러워 봤자이긴 합니다. 그래봤자 소년입니다. 소년이요. 그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A는 삐그덕거리는 나무 의자 위에 앉아 등을 기댔습니다. 온몸이 축축했고 흰 교복에 소년의 살갗이 비쳐 보였습니다만― 모두 붉고 퍼레서 진짜 살은 잘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A에게 뜨거운 녹차를 한 잔 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보기 드물게 말을 꺼내더군요. A는, 막대한 빚이 남겨지면 죽어버리면 되는 게 아닐까요― 라고.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A의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입술 한쪽은 터져 피딱지가 있었습니다. A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헛웃음에 가까운 걸 내뱉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소년 A의 집을,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었기에, 그렇기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습니다. 가정사는 건드리는 게 아닙니다. 밖은 비가 끊임없이 내렸습니다. 누가 떠내려갔대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습니다.

그리고 A는 내어준 녹차를 다 비우고서야 오두막을 떠났습니다.



나는 하룻밤을 오두막에서 묵고, 도시로 내려갔습니다. 그때가 아마··· 오전 여덟 시 부근이었습니다. 출근하려는 차들로 도로가 붐비고 자동차 바퀴가 바삐 굴러갔지만, 비가 내렸습니다. 손에는 우산 한 자루만 들고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내 집은 A의 옆옆집입니다. 슬리퍼가 빗물로 흥건한 아스팔트에 자꾸만 부딪혀 철퍽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거리가 암울했습니다. 폭풍 전처럼 고요하다가도, 주변 모든 소음에 묻혀 그 고요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생각에 문득 들떴던 모양입니다. 나는 손에 맥주 두 캔이 든 봉지를 쥐고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어제 A의 모습이 희미해지도록 말입니다.

집을 코 앞에 두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둔탁한 소리가 꽤 가까이서,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울렸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내려치는 듯한, 그런 소리요. 무언가 꺼림칙해져 집에 들어가길 서둘렀습니다. 문 앞에 도착해 열쇠를 꺼내려던 때에 비로소 그 소리가 멈췄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년이 생각났습니다. 푸르스름한 멍을 달고 다니는 A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에는 A의 집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현관에는···

야구 배트를 든 A와 쓰러진 A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A 아버지의 머리는 썩어 물러버린 메론 같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트에 맞아 죽은 게 A가 아닌 그의 아버지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A와 눈이 마주치고 A는 웃음과 동시에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는 붉은 혈액이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A는 나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와 자신을 좀 경찰에 신고해 달라 하더군요. 안 그러면 이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잡혀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자백할 생각이었던 겁니다. A는 미끄러운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어 주저앉았습니다. 힘이 들어간 팔과 손이 하얗게 질려 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A는 중얼거렸습니다. 죽어도 마땅할 작자야··· 그렇지? A는 구토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소년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A네 집 현관에서부터 역겨운 냄새가 풍겨 왔습니다.

이게 제가 본, 알고 있는 모든 것이고, 이후는 형사님이 보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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