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환급제 [unname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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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2 15:25조회 38댓글 0unname
어느 날, 정부에서 기이한 복지 정책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감정 쓰레기 환급제’였다.

박 씨는 반신반의하며 동네 주민센터를 찾았다. 입구에는 김 씨가 먼저 와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담당 공무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박 씨의 입안에 작은 칩을 부착했다.

“이제부터 살면서 느끼는 불쾌함, 분노, 슬픔이 수치로 환산되어 통장에 입금될 겁니다. 참지 말고 마음껏 불행해지세요.”

박 씨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날 오후, 무례한 손님에게 욕을 먹는 순간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불쾌 지수 감지: 15,000원 입금]. 퇴근길 만원 버스에서 발을 밟히자 또 알림이 왔다. [짜증 지수 감지: 5,000원 입금].

돈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행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행을 찾아다녔다.

김 씨는 일부러 배우자와 지독하게 싸워 ‘이혼 위기 위자료’를 챙겼고, 박 씨는 매일 밤 공포 영화를 보며 ‘공포 수당’을 받았다. 세상은 점점 우울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역설적으로 경제는 호황이었다. 사람들은 불행해서 번 돈으로 흥청망청 소비했다.

정부는 이 정책이 국민의 정신 건강을 데이터화하여 관리하기 위함이라고 홍보했다. 박 씨는 이제 중형차를 뽑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김 씨, 근데 정부는 이 쓰레기 같은 감정 데이터를 모아서 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알 게 뭐야? 돈만 잘 들어오면 됐지. 난 내일 일부러 차에 살짝 부딪혀볼 생각이야. 사고 트라우마 수당이 엄청나거든.”

그렇게 1년이 지났을 때, 돌연 환급제가 종료되었다. 사람들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정부는 대신 ‘감정 정화권’이라는 쿠폰을 발행했다. 그동안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한 번에 세탁해준다는 것이었다.

박 씨와 김 씨를 포함한 전국민이 기뻐하며 정화 센터로 향했다. 거대한 기계 장치 앞에 선 박 씨는 마음이 가벼워질 기대로 눈을 감았다.

기계가 작동하자, 박 씨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모았던 불쾌함과 분노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불행했던 기억이 사라지자, 그 기억과 연결된 ‘나머지’들도 함께 지워지기 시작했다.

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싸웠던 기억을 잃었다. 아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었다. 돈을 벌기 위해 겪었던 수모의 기억이 사라지자, 자신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도 잊었다.

텅 빈 눈을 한 박 씨가 기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옆에는 김 씨가 멍하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지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그 시각 정부센터 옥상에서 대통령의 모습이 변하더니 하나의 일렁이는 형체로 변한다.

외계인들은 인간, 아니 생체 기계들을 내려다보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인간은 효율적이야. 불필요한 감정 데이터는 우리가 에너지로 쓰고, 저들은 자발적으로 자아를 비워냈으니 말이야.”

“이제 노동 효율이 최고조에 달하겠군. 기억도, 욕구도, 슬픔도 없는 완벽한 일개미들이 됐어.”

박 씨는 손목에 묶인 ‘정화 완료’ 태그를 보며 무표정하게 공장으로 향했다. 왜 가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조차 깨달을 수 없었다.

세상은 아주 평온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감정에도 우열이 있을까?
를 생각하며 써본 글입니다. 즐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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