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공백 ⁰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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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2 17:10조회 33댓글 0일유헌
ー 친애하는 소우에게
잊어버릴 기억의 단서가 2학년 C반 잠겨있는 사물함에

                               2▓18 12월 ▓ 일 ー 요네하라 사


사아야로부터의 마지막 편지였다. 어딘가에 쫓긴 듯 급박하게 흘려 쓴 글씨가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와 주고받은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오전 6시쯤 탑승한 버스의 유리창은 외부의 온도차 탓에 김이 서려있었다.

마츠모토시부터 효고현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이미 지쳐버린 몸은 잠을 재촉했고, 손목시계의 시침은 어느새 8시 주변을 머물고 있었다. 창밖은 슬슬 나고야의 외곽을 향해가는 눈치였다. 나는 나른한 히터의 온기에 맞서, 슬쩍 열린 창문 사이로 시린 바람을 만끽했다. 잠겨있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쥔 마지막 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마치 어디선가 오래도록 본 듯했다. 희끄무레 번진 글씨에는 그에 담긴 애틋함과 오랜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잊어버릴 기억'이라니, 이로써 사아야가 무언가 알고 있던 게 확실해졌다. 그 무엇을 기억해 낸다면 본래의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기억을 되찾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마음속 일렁임이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을까.

버스는 대략 3시간 40분을 달려 나고야역에 종착했다. 나는 찌뿌둥해진 몸을 일으켜 한겨울의 아침으로 발을 디뎠다. 코로 들이쉰 차가운 공기가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낡아버린 흰색 운동화를 끌고서 역의 매표소로 향했다.

부산스러운 기차역의 매표소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백팩 안을 헤집자 나온 지갑에서, 나는 팔천 엔의 지폐와 이백삼십 엔의 동전을 꺼내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노조미 신칸센 표 하나요."

네ー하는 짧은 답과 함께 내 손에는 표 하나가 들렸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감정을 떠안아 고향을 찾았으니. 만약 내가 그 사물함을 찾아 연다 해도, 정말 잃어버린 기억과 감정을 메꿀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겨울날 무렵 기억의 여정이 잘 마무리 되길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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