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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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구두 굽이 보도블록을 찍어 누르는 소리가 유독 무겁게 들리는 퇴근길이었어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오늘 하루 치의 피로를 매단 채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목이었죠. 가파르게 솟은 동네의 높은 돌계단을 내려갈 때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어요.
“가위, 바위, 보!”
교복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소년과,
바람에 치맛자락이 가볍게 흩날리는 소녀가 계단 중간에 서 있더군요.
한 칸, 또 세 칸. 그 하찮고도 정직한 승부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의 세계는 한 뼘씩 높아지거나 제자리에 머물렀어요.
주먹을 내고 이겼다며 환호하는 소년의 뒤로, 넘어질세라 그의 가방끈을 살짝 붙잡은 소녀의 손끝이 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대책 없이 무구할 수 있을까요.
목적지가 어딘지, 이 계단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아이들은 오직 서로의 손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죠.
그 아이들의 실루엣 주변에 금박을 입히듯 노을이 졌고, 그늘진 계단 위로 부서지는 웃음소리가 마치 탄산음료의 기포처럼 톡톡 터져 올라왔어요.
무릎이 꺾이는 피로 속에서도 그 광경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내 몸 안의 끈적한 일상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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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들에게 이 계단은 정복해야 할 고비 따위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길게 머물고 싶은 유예의 공간이겠지요. 오늘의 피로이나 내일의 일 같은 건 잠시 잊은 채,
가위바위보 한 판에 온 우주를 걸 수 있는 저 눈부신 특권.
“야, 너 늦게 냈지!”
티격태격하면서도 지는 노을보다도 밝게 웃는 그 모습과 다시 가위바위보를 준비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저는 아주 오래전, 누군가와 나누어 꼈던 반지의 감촉을 떠올렸어요.
이제는 해독할 수 없는 비문이 되어버린 나의 청춘도, 한때는 저렇게 투명하고 시원한 소리를 냈을 거라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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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다 내려온 나는 다시 무거운 가방을 고쳐 매고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갑니다.
등 뒤로 멀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 텁텁한 도심의 공기를 아주 잠시 청량하게 바꿔놓네요.
비릿한 현실의 냄새를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끔 신이 내리는 선물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잃어버린 계절을 여전히 찬란하게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목격하는 일.
그 지독하게 예쁜 풍경을 가슴 한구석에 갈무리하며, 나는 다시 나만의 계단을 묵묵히 걸어 내려가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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