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8 08:03•조회 25•댓글 2•Ehfkd
[4화]
“봐. 여기.”
태리는 문제집의 한 부분을 펼쳐 아이들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심하게 찢긴 흔적이 남아 있는 페이지였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가 일부러 찢은 거야. 페이지 두 장, 세 장이 뜯겼잖아.
어른이 집어 던져도 이렇게는 안 돼.”
그때 한 아이가 태리의 말에 반발했다.
“야, 원래 덜렁거리다 떨어졌을 수도 있는 거 아냐?
그렇게 막 다른 사람을 의심해도 되는 거야?”
반의 회장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들을 대신해 나서는 모습이었고,
서로를 의심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도 태리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잠시 말을 멈춘 태리는 문제집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런데 봐. 이건 클립으로 집혀 있던 게 떨어진 게 아니야.
찢긴 거잖아.
덜렁거리다 떨어졌다면 이렇게 찢겨서 남은 페이지가 없을 리가 없지.”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하나 더.”
태리는 문제집을 한 장 넘기며 찢긴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페이지, 숙제 검사하는 부분이야.”
아이들 사이에서 작게 술렁이는 소리가 났다.
숙제 검사 페이지가 사라졌다는 건, 이유가 너무 분명했다.
“이거 없으면 선생님이 검사 못 하잖아.”
태리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교실 전체에 또렷하게 퍼졌다.
회장처럼 보이던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태리는 천천히 교실 뒤편으로 걸어가
쓰레기통 옆에 가지런히 세워진 문제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문제집.”
태리는 손끝으로 문제집 옆면을 톡 건드렸다.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옆에 세워져 있었어.
구겨진 자국도 없고, 물이나 우유가 묻은 흔적도 없어.”
아이들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버린 것 같지는 않네.”
태리는 그제서야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모르고 버린 사람은
다시 꺼내서 이렇게 정리해 두지 않아.”
잠깐의 정적.
그 순간, 교실 한쪽에서 누군가 시선을 피했다.
“…그럼.”
태리는 그쪽을 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이 교실에 혼자 있었던 사람은 누구야?”
아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아이에게 쏠렸다.
문제집 주인이었다.
그 아이는 얼굴이 점점 하얘지더니
두 손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 나 그냥…”
목소리가 떨렸다.
“숙제 안 해서…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잠깐 가져갔다가…
무서워서 못 가져가고….”
그 말과 함께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태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답은 나왔으니까.
그때, 해인은 태리를 힐끔 바라보았다.
큰 소리도, 위협도 없이
사실만을 골라내는 모습이었다.
‘…소문이랑 다르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태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아
다시 책을 펼쳤다.
하지만 그날 이후,
명운초등학교 6학년 2반에서
설태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아주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