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이름

설정
2025-07-10 17:26조회 57댓글 1울희 지피티에게 평가를 부탁드려요
『 파도의 이름 』

글쓴이 / 챗지피티

⎯⎯⎯

가을의 바다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해변가에 앉은 지훈은 낡은 스케치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물결은 멀리서 조용히 밀려와, 모래 위에 조용히 입을 맞추곤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처럼, 자취 없이 사라지는 그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훈은 한때 화가였다. 아니, 아직도 그는 화가라고 믿고 있었지만, 캔버스 앞에 앉지 못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의 마지막 전시회는 실패였고, 그 이후로 그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손끝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버린 채 돌아오지 않았다.

“왜 여길 온 거죠?”

그의 옆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지훈은 고개를 돌려, 파란 머플러를 두른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수연. 해변 근처 민박집의 딸이었다.

“파도를 그리러 왔어.”

지훈은 대답했다.

“파도는 항상 움직이는데, 어떻게 그릴 수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지훈은 미소 지었다.

“그래서 그리기 어려워. 하지만 가끔은, 그 순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수연은 대답 없이 모래 위에 앉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엔 전설이 있어요. 바다의 한가운데에 ‘이름 없는 파도’가 떠다닌대요. 그 파도를 만나는 사람은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나보낼 수 있대요.”

지훈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잊고 싶었던 기억. 실패와 후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실망. 그 모든 것이 그의 그림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 넌 그 파도를 본 적 있어?”

지훈이 물었다.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언젠가 꼭 보고 싶어요.”

그날 밤, 지훈은 민박집 창문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밤바다는 낮보다 깊은 색이었다.


달빛이 물 위에 은색으로 깔려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숨소리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훈은 문득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바다로 향했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점점 바람이 거세졌고, 파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수평선 너머에서 유난히 하얗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밀려오는 파도가 보였다.

그것은 다른 파도와 달랐다. 마치 시간조차 잊은 채, 한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스케치북을 꺼내 그 파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손이 움직였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눈은 오직 파도만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직 자신과 파도만이 존재했다.

그가 그림을 다 끝냈을 때, 파도는 모래 위에 부드럽게 부서지고 있었다. 지훈은 눈을 감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네 이름은...”

하지만 그는 끝내 그 파도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름 없는 파도. 수많은 이들의 잊고 싶었던 기억을 삼키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그것. 그도 이제 자신의 기억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아침, 수연은 해변에서 놓여 있는 스케치북을 발견했다. 거기엔 아름다운 파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다시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괜찮다.’

그날 이후, 지훈은 해변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지만, 수연은 매년 그 계절이 오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다시 만난 그 파도.
그리고, 그 파도가 품었던 이름 없는 위로.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