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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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1 21:00조회 88댓글 2유키노텐시
[프롤로그] 보이지 않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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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아홉은 늘 잿빛 농담(濃淡)으로 가득했다.

지독하게 눌러 쓴 샤프심 가루가 손등을 까맣게 물들일 때마다, 나는 내가 소모되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독서실의 낡은 에어컨은 신경질적인 기계음을 내뱉었고,

내 책상 위에 놓인 문제집들은 거대한 성벽처럼 나를 가두고 있었다.


"숨 막혀."

어느 날 밤, 나는 무거운 가방을 내던지듯 멘 채 그 성벽을 탈출했다.

밤공기는 낮의 열기를 머금어 눅눅했지만,

좁은 칸막이 안보다는 훨씬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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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걷다 멈춰 선 곳은 어느 낡은 주택가의 끝자락. 그곳엔 낮은 가로등 불빛을 등진 채 서 있는...

오래된 붉은 담벼락이 있었다.



담벼락 위로는 이름 모를 여름 넝쿨이 별처럼 흩뿌려져 있었고, 그 너머에선 은은한 풀꽃 향기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 차가운 벽돌에 등을 기대고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의 차가운 표면을 이마에 갖다 대며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하...''

정적을 깨뜨리는 작은 소리.


'딸깍-'

커피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고요한 골목에 파동처럼 번져 나갔다.

그때였다.

"저기, 이 밤에 여기서 예쁜 소리를 내는 게 누구죠?"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투명한 목소리였다.


마치 여름밤의 한 조각을 베어 문 것 같은 청량함.

나는 숨을 멈췄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온기가 담벼락의 거친 질감을 타고 내 등 뒤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소리가 들렸어요?"


"네. 여기는 아주 고요하거든요. 바람 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방금 당신이 캔을 따며 내뱉은 작은 한숨 소리까지."

벽 너머의 실루엣이 달빛을 받아 일렁였다.

그 너머에 누가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직감했다.


나의 이 답답한 여름을 구원해 줄 무언가가,

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가 참 따뜻하시네요. 꼭 여름밤의 그늘 같아요."


가로등 불빛이 우리 사이의 담벼락을 비스듬히 핥고 지나갔다.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맞물리기 시작한 열아홉의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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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살짝 넘을 분량의 장편소설이에요.
완성하기까지 스스로를 꽤나 괴롭혔던 글입니다.
과연 제 마음만큼 독자분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지 조금 떨리기도 해요.

서툴더라도 다정한 눈으로 마지막 화까지 함께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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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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