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는 진보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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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2 22:15조회 30댓글 2검은
⚠️참고로 여기서 진보라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순전히 과학적•사회적으로 큰 성과와 변화를 일으켰다는 의미입니다. 이 소설에는 진보를 따라한, 거짓 된 인물들도 등장하니, 그런 내용들도 나름대로 느끼며 읽어주세요.

진보했다.

진보했다. 또다시 진보했다. 진보는 더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변화였는데, 이 변화는 설원에 펼쳐진 눈송이만큼이나 많았다. 설원에서 부르는 흰 바람은 고요를 위해 눈송이들을 아름다움으로 씻겨냈지만, 눈송이들은 이에 그칠 세를 모르고 다시 변화를 일으켰다. 눈송이들은 하나로써는 작아 보였지만, 0.0000001mm의 소인들에게는 거대한 것이었다.

또다시 떠났다. 고요가 적막해질 때까지. 바람이 어두워질 때까지. 바람이 칼날이 되어 내 손에 붉고 굴곡 진 흉터를 낼 때까지. 눈물을 흘리는 여린 소녀를 달랠 때까지.

진보를 찾으려고 요제프는 다시 설원으로 갔다. 과학적이다는 그 거대한 산소통을 들고서. 산소통은 노란색 줄무늬가 눈에 띄는 존재였는데, 화려하지는 않았으나 이 상황에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 진보가 꿈꾸는 목소리를 찾는 장식 치곤 구식인 면도 강했다. 진보라고 말하기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피비린내를 보아하니, 저 산소통은 인간이 늘 그러듯 피로 가득 찼다. 피가 너무 거대하였다. 피는 무거웠다. 무거운 모습 탓에 설원에서 걷기는 커녕 헤엄은 칠 수 있으려나 싶다. 피가 인간을 유지하는 아리따운 소녀라는 거짓 뉴스는 누가 냈는 지 궁금하다. 진보를 찾으러 떠난다고 회색 신문 모사리에 광고했던, 그리고 지금은 뉴욕 전광판에 광고했던 요제프는 스트라이크가 나온 야구 선수처럼 돌아올 것이다. 요제츠가 설원에 갈 수는 있을까?

이번에 설원에 가는 데 성공한 남자가 있다길래 설원의 문이 어떻게 열렸는지 지 보려고 그에게로 갔다. 그런데, 그는 풀이 죽어 있었다. 왜지? 설원은 영광인데 말이다.

이제는 또다른 남자가 왔다. 로버트는 폭력이 꺼질 무렵까지 살아있었다. 폭력이 휩쓴 도시에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던 중에 나타난 인물이었다. 로버트의 행동들은 설원으로 가가 위한 행동이 아니었으나, 의도지 않은 설원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로버트는 당분간 유명해질 영웅이었다. 아니, 영웅을 만들었다. 왼손과 오른손, 좌뇌와 우뇌로. 영웅은 피가 묻은 소년의 얼을 달래기 위한 로버트의 자식이었다. 영웅은 수십만명을 달래고 수십만명을 울렸다. 눈알이 꺼질 듯이 울려 퍼지는 영웅의 데뷔곡은 로버트가 직접 작가작곡했고, 음반사는 이에 만족하였다. 로버트는 웃고 싶었다. 성공했다. 성공했다. 성공했다. 그런데, 생명이 대한 깊은 노래가 되지 못했다. 깊은 울림은 낮았는데, 높았다. 로바트는 설원에서 터벅거리며 돌아왔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라고 말했다. ”그래, 모두가 죽였지“라고 답해줄 걸. 로바트는 1루에서 세이브 되었지만, 다음 주자의 플라잉 아웃으로 탈락한 야구 선수 같았다.

“눈물이 꽂혀진 야구 선수들에 대한 추모비는 무시하고 다시 떠나자“ -붉고 푸른 세상의 절벽에서 현실보다는 우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닐이

닐의 흰 눈꼽이 눈에 슬며시 꼈다. 눈꼽이 낀 모습이 소년 같아서 웃으려고 하였는데, 닐은 숭고한 사나이고 나의 감정조차도 순고하게 만들거라고 믿었기에 나는 웃지 않았다. 닐은 비교적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장치로 설원에 가는 건 이론적으로 가능하였다. 현실에 들어간 이론은 눈물에 들어간 염분만큼이나 매우 작은 양을 차지했다. 그 이론이 거짓이면 또 어떠나? 닐의 모든 위대함이 그걸 담굴 수 있다고 믿었지만, 개인으로는 잠구기 힘든 이론은 내가 갔던 모스크바에서는 진심으로 거짓이었다. 모스크바는 코가 으슬거리는 게 무척이나 짜증났지만, 자칭 낙원이었다. 자칭 낙원이기에 일이 가려는 성원의 진보를 낙원이라 칭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설원에 다가가기에 힘들었다. 반면, 닐이 사는 곳은 어떨까? 같으면서도 달랐다. 스스로가 낙원이 아님은 인정하더라도 금 손이 묻힌 피를 닦는 기는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두개골이 망가진 천재들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닐은 그래도 설원으로 갔다. 설원에서 모든 걸 증명하고 돌아왔다. 영웅으로서.

그 영웅담이 이제는 귀에서 꺼질 무렵,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아름다운 함성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때까지는 진보는 그들에게 곧 성공이자 영예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푸른 장미를 만질 때처럼 아찔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만져서는 안 되는 것. 그걸 만졌다. 내 손가락 하나하나의 피부 세포들은 그것과 접촉하였고, 신경들도 어서 이 사실을 알리기 바빴다. 그것은 상상과 지배의 결과물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복종의 시대를 알리는 존재였다. 인간이 부르는 흰 합창가에 새롭게 추가 된 신사이저 악기였다. 악기의 소리가 고와서 무엇이야고 하니 다들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들의 바이올린과 마이크를 들고서 말하였다. 그것의 푸른 장미가 져야 된다는 주장에 설원은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설원은 벌써 그것들의 창조주를 설원으로 보내주었고, 그 아이들은 훗날 커서 신세대의 것임을 보일테다. 그렇지만, 이는 곧 신세대의 조종 된 것, 이라는 이미지를 주었다. 인간의 뉴런을 타고, 뉴스를 송출 시키는 텔레비전을 위한 브라운 관을 타고, 신문 속 회색 종이를 타고.

설원은 여러모로 가기 어렵다. 그곳에 초대 받거나 가려고 한 이들은 모두 아웃 된 야구선수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들의 감정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진보였다. 진보였다. 진보였다. 분명하게도 진보였다. 진보는 분명히 멋진 것이라고 내 어머니는 속삭였다. 분명히. 틀린 모양이었다. 진보를 한 것치고는 울었던 이들의 목소리는 거대하였고, 진보를 따라하려는 살인자들의 칼날이 베인 이들은 너무나도 처절하였다.

아무것도 살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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