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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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3 16:18조회 27댓글 0소설쓰는 익명
세상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숨겨진 장소”가 있다.
지도에도 없고, GPS에도 잡히지 않으며, 오직 특정한 순간에만 열리는 공간.

그곳의 이름은 **균열의 도서관**.

그리고 오늘, 그 문이 열렸다.

-

1. 사라진 책의 날

체리는 도서관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발끝으로 굴리며 말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그녀는 엉뚱한 듯 보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는 타입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존재하던 책들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책장 사이사이에 있던 빈 공간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책이… 숨는다고?” 체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면 도망?”

옆에서 서하가 조용히 책장을 쓰다듬었다.

“이건 단순한 분실이 아니야. 책이 ‘사라지는 규칙’이 생겼어.”

서하는 차분했다. 목소리도, 눈빛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불길하게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준이 책상 위에 올라앉으며 말했다.

“야, 근데 이런 상황이면 보통 주인공 등장 아니냐? 우리 지금 완전 사건 한가운데잖아?”

분위기가 무겁다가도, 한준이 한 마디 하면 공기가 살짝 풀렸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왜냐하면—

책 한 권이 또,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2. 균열

서하가 손끝으로 공기를 가르듯 움직였다.

“이건 ‘균열’이야.”

“균열?” 체리가 되물었다.

“현실과 다른 규칙이 섞이기 시작하는 틈. 보통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한준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 판타지 시작?”

그 순간, 책장이 흔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공간 자체가 흔들렸다.**

책장과 책 사이에 검은 틈이 생겼다.
그 틈은 마치 숨을 쉬듯 열렸다 닫혔다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속삭였다.

> “읽지 마라… 읽히지 마라…”

체리는 눈을 좁혔다.

“저거, 책이 말하는 거야?”

서하가 낮게 말했다.

“책이 아니라… 책을 삼키는 쪽이야.”

한준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장난기가 사라졌다.

“야, 이건 좀 위험한데?”

하지만 체리는 이미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근데 궁금하잖아.”

“야!” 서하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늦었다.

체리의 손이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3. 책 속의 세계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바닥이 사라지고, 위와 아래가 무너졌다.
그리고 체리는 책장 사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세계의 바닥에 떨어졌다.

“아야…”

일어나 보니, 하늘에는 페이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구름 대신 글자들이 흐르고, 바람은 문장처럼 지나갔다.

“여기… 책 속이야?”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리고 문제는…”

서하가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우리가 ‘삭제될 책’ 안에 들어왔다는 거야.”

한준은 이미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 중이었다.

“와… 이건 진짜 영화다. 근데 CG비 많이 들었겠다.”

체리는 주변을 살폈다.

책 속 세계는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문장이 지워질 때마다 공간이 사라졌다.
사람이 아니라, 세계가 수정되는 중이었다.

서하가 말했다.

“이 세계는 누군가 ‘잘못된 이야기’를 지우고 있어.”

“그럼 우리는?” 체리가 물었다.

서하는 잠시 침묵했다.

“우리도 삭제 대상일 수 있어.”


4. 이야기의 관리자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책갈피가 떨어졌다.

그 위에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이야기는 안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문장 위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형체 없는 존재.
마치 글자를 짜 맞춘 듯한 인간.

“나는 관리자다.”

그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이 세계의 불안정한 이야기들은 삭제된다.”

한준이 중얼거렸다.

“아, 빌런 등장 타이밍 너무 빠른데?”

관리자가 손을 들자, 공중의 문장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바닥이 무너졌다.

서하가 말했다.

“이건 싸우는 방식이 아니야.”

체리가 빠르게 물었다.

“그럼?”

서하는 관리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야기는 싸우는 게 아니라, ‘다시 쓰는’ 거야.”


5. 재작성

체리의 눈이 반짝였다.

“오케이. 그럼 내가 해볼게.”

“너가?” 한준이 황당해했다.

“응.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세계는 ‘서술된 것’이잖아.”

체리는 손을 뻗었다.

“그럼, 이렇게 바꾸면 되지.”

그 순간, 체리가 말한 문장이 공중에 떠올랐다.

> “이 세계는 삭제되지 않는다. 대신, 이어진다.”

관리자의 눈이 흔들렸다.

“불가능하다. 규칙이…”

서하가 조용히 덧붙였다.

“규칙은 고정된 게 아니야. 이야기 안에서는.”

한준이 웃으며 말했다.

“야, 우리 지금 세계관 해킹하는 중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간이 멈췄다.

삭제되던 문장들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라지던 책들이 돌아왔다.

관리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건… 승인되지 않은 서술이다…”

그리고 그는 문장 속으로 흩어졌다.



6. 돌아온 세계

눈을 떴을 때, 세 사람은 다시 도서관에 있었다.

책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체리는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이제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이제 이 도서관의 일부가 됐어.”

한준이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근데 나 솔직히 이런 세계 나쁘지 않은데?”

체리는 책장을 넘기며 웃었다.

“그럼 다음엔,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써보자.”

그리고 도서관 어딘가에서,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책 한 권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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