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이 문제를 두고 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넌 늘 말하곤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넘어버린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고. 그래.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제대로 된 사랑의 정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랑은 서로 애틋해하고 서로를 애정하는 감정이 아닌가. 선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치 않는다.
네크로필리아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죽은 사람을 사랑하여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한 때 지독하게도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을 때를 기억한다. 단순한 교통사고로 숨진 그 이는, 온몸이 피로 가득했고 의식을 차리지 않았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슬픈 것은 혼자하는 사랑이다. 사랑받는 대상이 사라진 사랑은 너무나도 참혹하고 비참하니까. 그렇담 대상을 보내지 않으면 어떨까? 이를 테면 집 안에 그대로 눕혀 둔다든지. 썩든 부패하든 전부 내버려 두고 말이다.
그건 죽은 이에게 죄가 되는 행동이 아닐까?
너의 그 걱정스런 물음에 나는 곧바로 답할 수 있었다. 아니야. 죽은 이도 분명 날 사랑할 테니까. 그땐 그것이 아주 지독한 착각인줄 알지 못했다. 그저 그에게만 미쳐 있던 철없고 멋없던 시절이. 지금이라도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한 번 같은 선택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때 당시에는 그 감정이 너무 소중했고 죽은 그가 너무 소중했으니까. 소중했다면 하루 빨리 장례를 치루어 주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비참하잖아. 우리 둘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이야. 가족도 친구도 뭣도 없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였고 친구였고 구원이였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가 내 구원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소스라치게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둘이 살아가고 이겨내는 거야. 지독해지지 않도록, 상처만 받지 않도록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세상이였는데 이젠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잖아. 얼마나 암울하고 고독한 미래일지.
그렇지만 장례를 잘 치루어 주는 게 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야.
네 말은 가시가 없었고 오로지 정당한 논리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두려웠다. 그런 논리를 가진 네가 무너져 내릴까 봐. 네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리 맞지도 않았다.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던 시절에 떠난 그 이가 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내게 원통해할까? 날 원망하고 발악할까? 나는 늘 너를 내 구원이라고 여겼었다. 밑 빠진 독에 붓고 있었던 건 작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속속들이 빠져 나가는 희망에 포기라는 말을 어렵게 되뇌었다.
너를 왜 내 구원이라고 여겼을까.
나는 왜 너를 구원해 주지 못한 걸까.
우린 왜 서로의 구원이 되어 주기로 다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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