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없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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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4 00:19조회 32댓글 1유하계
ep.16
+ 큐리어스 🌼

다음을 위한 빌드업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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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이 칠흙같던 땅 위로 소복히 내린다. 하늘 위에서 천사님들이 내려오는 것처럼, 어여쁜 눈들. 올해 첫눈이였다. 첫눈에 기뻐하며 좋아하는 이에게 같이 눈을 보러가자며 낭만을 즐겨야할 내 나이 열일곱. 그러나 이런 쓸데없는 낭만 하나에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걸어다닐 때에는 신발자국이 눈 위로 새겨지지 않는다. 뽀드득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저 맨 발이 눈에 포옥포옥 닿는 소리와, 미치도록 시려워 헐떡이는 내 숨소리와 약 3보마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윽, 하는 신음소리뿐만이 울릴 뿐이다. 이 무한한 공간에서 정처없이 나는 맨발로 떠돌고 있고, 눈은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지 미친듯이 내려온다. 금방 내가 밟는 땅은 하얗게 물들어버렸다. 이러면 더 걸어가기 힘들어지는데….

“윽, 잠깐 쉴까….”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다 이내 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허름한 옷을 아래로 당겨 방석삼아 앉아본다. 그래도 엉덩이가 차갑다. 뭐 어쩌랴, 눈 앞은 새하얗고 머리와 옷도 금세 물기로 가득해졌는데. 어떻게 더 움직일 수 있겠는가?

발목에 묶인 족쇄가 다리 뿐만 아니라 내 전신을 잡아 가둔다. 무겁다. 맨발에 묶인 족쇄가 질질 끌린다. 아니, 내가 족쇄에 끌려다닌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걸어야할까? 정처없이 걸어다니는 내 모습이 멍청하기 짝이 없다.

“나는 이 눈 사이에서도 버티고 있는 잡초들보다 못하는구나. …멍청해.”

그 뭣같은 지하창고에서 벗어난지도 어언 몇개월이 지나간 듯하다. 나와 누이를 가뒀던 그 악몽뿐인 기억의 지하창고에서 나는 누이를 저버리고 떠났다. 열대야에 뜨겁던 밤, 나는 혼자가 되었고 정처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누이는 아직도 그 곳에 있는걸까. 그치만 이제 와서 발길을 돌리기엔 너무나도 늦어버렸는걸.

때늦은 눈물이 눈 앞을 가리고, 흐릿해진 시야에 눈 앞은 정말 하얀색으로 가득 차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눈 앞에서 나는 비로소 공허함을 느낀다. 한 번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또륵하고 떨어진다. 그제서야 눈이 펑펑 내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추워 죽겠는데도 참 아름답다. 지하창고에서 세 번을 봤던 첫눈은, 언제나 누이와 함께 봤었는데. 그 눈을 보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는데.

“다음 첫눈이 내릴 때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희망을 놓치않던 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그녀의 뺨을 쓸며 눈을 맞추고 웃었다. 나라도 희망을 줘야했다. 그녀의 세상에는 나 뿐일테니.

“첫눈이 내리는 날 나가자. 내가 누나를 지켜줄게.”

“정말이지?”

“그럼, 그렇고 말고.”

아직도 누이를 버리고 떠나던 날, 그녀의 원망섞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미안하다며 연신 말하며 문 밖을 나설 때, 묶여진 자신의 족쇄를 만지작거리며 애써 미소짓던 누이의 얼굴이.

이것이 누이를 버린 나에게 하늘이 내린 천벌이라면, 달게 받아야할 것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걷는다. 정처없이. 또 사람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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