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잔향은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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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4 07:07조회 53댓글 0Y
“형, 바깥은 어떤 곳이야? 나가봤어?”
“응. 당연하지, 되게 멋진 곳이야.”

나의 형은 친절했다. 내가 나가지 못한 바깥을 보고 싶어하며 그것에 대해 물을 때마다, 항상 친절한 답변을 내주었다.

일 때문에 얼굴조차 자주 비추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계신 탓일까,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밖에 없었다. 서로를 기대하고 의지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래서 아름다웠던 시절의 꽃다운 이야기.

그것은 전부, 다가올 모든 것이 망가질 그 순간을 위해 쌓을 수 있었던 행복이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밤 속 집 안을 가득 채운 소리에 피로마저 확 달아난 것만 같았다.

”형, 내가 나갈…“
”아니야. 내가 갈게.“

눈을 비비며 나가려던 찰나, 본인이 나가보겠다는 형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로 돌아갔다. 문 밖의 소리들은 희미하게 들려왔고, 그것을 나는 듣지 못했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형…?“

의지하고 기쁨마저 함께 나누었던 그 형은, 집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정도 몸은 자랐고, 나는 정차없이 길을 떠돌았다. 기억 속의 첫 바깥을 마주하는 풍경이었지만 목적지는 없었다.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서? 아니면 구원자라도 발견하기 위해서?

어떤 이유에서였을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돌아다녀 도착한 곳은 담배의 매캐한 냄새가 하늘 위로 올라오던 인적이 드문 뒷골목이었다.

“야, 뭐야? 저리 안가? 여긴 우리 구역이야.”

지나가려 했건만 다가온 그 사람의 덩치는 컸고, 온몸은 문신으로 치정되어 있었다. 괜히 내게 다가왔던 그 시비에 열이 받았지만, 깡패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를 피해 돌아가려던 찰나,

“아무래도 이런 데 떠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어지간히도 할 일 없나본데, 빨리빨리 가라.”

다시 생각해보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정말 목적없이 온 게 전부였고, 그 이상의 것은 없었으니. 할 일이 없다 하면 없었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것에 인내심 가지지 못했다.

“그쪽이야말로 할 일 없으니까 이러고 계시겠죠. 아무한테나 이렇게 시비 털고 계시지 않나?”
“뭐? 이 자식이…”

그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폭행이라도 저지르려는 듯 주먹을 쥐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어떤 여자가 제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골목 안쪽에 있었던 걸까, 보이지 않던 모습까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거기까지만 해. 더 이상은 의미 없다는 거 알잖아?”
“…네.”

순간 그 남자는 쭈글거렸고, 주먹을 쥔 손에는 힘이 풀린 듯 보였다.

“미안, 좀 격하긴 하지? 그래도 도와줬잖아. 뭐, 이걸로 갚았다 해줄래?”

이상한 사람 같았다. 갑자기 다가온 우두머리로 보이던 여자는 입꼬리를 올려 싱긋 미소 짓더니 나를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커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 그래. 내가 일손이 좀 부족하거든. 내 밑에서 좀 일할래?”

그것은 분명 부탁이 아닌 강요였다. 거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그 의지가 눈에 담겨 훤히 보일 정도였으니까.

“… 그러면, 저랑 닮은 사람 아세요?”

그녀는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아래로 내려 가만히 있다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

“본 적은 있는 것 같네, 근데 왜?”
“그러면 좋아요. 할게요, 그 일.”

내 대답을 듣자 그녀의 웃음은 쉽게 감춰지지도 않았다.

“좋아. 잘 부탁해?”

웃음이 가득했고, 그녀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에 응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녀와 난 알자 못했다.

그것이 파멸로 이끌어진 관계일 줄은.

그렇게 그녀 밑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그녀가 주는 임무는 충분히 수행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빠른 성장이네. 그래, 더 열심히 해.”

그것에 고개만 끄덕거릴 뿐, 나는 어쩌면 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동안 형을 본 적은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도 나온 말은 때를 기다리라, 그뿐이었으니.

내 인내심은 더 이상을 기다릴 수 없었고, 형은 그리웠다. 그것이 전부였던 내가 오늘도 임무를 수행할 그 시간이었다.

”이, 이봐!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네!“

상대 조직의 일원.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되게 일을 잘하더군? 그래도 나름 라이벌 조직인데 내가 인정하는 실력은…“
”됐고, 본론만요.“
”크흠… 그럼, 본론만 얘기하지. 니네 보스를 배신해.“

들려온 그 소리에 흠칫 놀라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성공한다면 응당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하고, 형이던가? 네 가족도 찾게 해주지.“
”형이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그게 중요한가? 더 중요한 건 너네 보스가 너를 더 부려먹으려 형의 존재를 이용하고 있다는 거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더 이상 이어지기도 쉽지 않은 상하관계, 이상도 이하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 조직의 정보들을 우리 쪽에 넘겨. 오늘 안이면 돼. 부탁하지. 그럼…”

그는 그늘진 어둠만이 가득한 곳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그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선택했다.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몰라.”

나는 조직의 건물로 들어가 경호원을 제압해 그의 키카드를 빼앗고는 그것을 이용해 지하실 문 앞에 섰다.

키카드를 댈 수 있는 벽에 그것을 갖다대자 삐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낮은 기계음이 울리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 서류를 뒤지고 있을 때,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졌다.

“안녕? 아, 이제는 배신자라고 불러야 하나?”

“…”

상대해보려 했지만 결국 내 단검은 저 뒤에 날아간 상태였다.

“배신자, 작별이네.“

그녀는 나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녀의 살기가 공기 속에 스며들었고, 그것이 피부에 닿는 감각은 꺼림칙했다.

”그래도 너 덕분에 재미는 있었어. 잘 가.“

탕.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이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나는 눈을 감았지만,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슬며시 뜨고 앞을 바라보자, 그리워 했던 나의 형이 있었다.

“꼭… 살아남겠다며. 안 그래?”

그는 웃는 얼굴로 내 곁을 떠났다. 툭. 그가 눈을 감고, 내 얼굴에 닿을 것만 같이 올라오던 그 손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대체 왜…”

그렇게 혼자 떠났으면서, 본인의 생사조차 알리지도 않았으면서. 왜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를 위해, 이렇게 희생한 건지. 대체 왜 그런건지.

“정말 눈물겨운 우애네. 뭐, 그래봤자 내 총알은… 음?”

틱틱. 그녀가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총에서는 총알이 발사되는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하… 아무래도 마지막이었나. 괜히 방해꾼이 끼어들어선.”

그녀의 말들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워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도 내겐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무겁게 짓눌리는 공기, 가라앉는 모든 것들과 젖은 이 슬픔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녀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멘탈이라도 나갔어? 참, 배신까지 할 대단한 용기도 없는 것 같았는데.”

자신보다 낮은 상대에게 말하듯 조소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나는 조심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등 뒤로 손을 숨겨 단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허해진 그 눈에 생기조차 감돌지 않는 눈빛이 그녀의 분노를 자극하기라도 했던 것인가.

“그래, 그냥 여기서 끝내줄게.”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에, 나는 숨기고 있던 단검을 꺼내고는. 푸욱. 그녀의 어깨를 찔렀다.

“윽…!”

그녀의 아픈 듯 흐르는 신음소리가 가득했고, 주저앉은 그녀를 나는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런 사람 하나에게 우리 형이 죽임을 당했어야 했던가.

“…진짜 바보같긴 한데.”
“너, 너! 나 아니면 못 살아나갈걸?!”

항상 그 높은 자리에 서서 모두가 우러러보기만 하던 존재가 지금 내게 살려달라 빌고 있다. 이게 벼랑 끝에 몰린 자의 발악인건가.

“하… 웃기지도 않네. 내가 시간 끌어서 뭐 하는거지.”

키킥 거리며 웃음을 드러냈다. 형의 죽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를 향하는 조소가 분명했다, 그것은.

나는 그녀의 어깨에 박혀있던 내 단검을 뽑았다. 다시 그녀의 아픈 고통에 흐르는 신음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나는 그것을 아무것도 담지 못한 그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음에 한 번만 더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그땐 반드시 끝장낼 거야. 명심해.“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고, 나는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그래. 형 말대로, 꼭 살아남을게.“

내가 했던 말을 지나 형이 바랐던 내 생존을, 형이 다하지 못한 그 몫까지 전부 이어나가겠다고.

”형을 위해서.“

그리고 그 형이 살리고자 했던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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