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血跡 (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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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7 14:17조회 57댓글 45eo1z
당신은 마치 신이 힘주어 곱게 빚어 만들어진 사람 같다.

이름 떨치는 가문 밑에 둘째로 태어나 큰 압박도 받지 아니하고, 고결하게 자라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아부어 키워진 고귀한 몸.

그 보얗고 도자기 같은 피부엔 평생 피멍 한 번 든 적 없을 거고 곧은 섬섬옥수에 흙탕물 한 번 묻은 적 없을 테지.

햇살에 비쳐 드러나는 음영으로만 봐도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은 누구 손에도 채여보지 않고 둥근 빗에만 몇 번 쓸렸던 게 전부일 테다.

감히 손을 대기조차 두려운 값나가는 백자 같은 사람. 남기고 가는 잔향 내지는 두고 가는 온기마저도 귀하게 느껴져 당신의 손이 닿았던 것이라면 만지기가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단결 같은 뺨 표면을 날카로운 물체로 살살 그어 붉은 음혈이 흐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뜨겁고 물쩡한 액체가 턱 선을 타고 흘러내리다 그 끝에 맺혀서 값나가는 옷감에 두 어 방울 얼룩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 살이 돋아서 그 얄팍한 자국을 메워도 보유스름하게 흉터가 남아 수려한 이목구비보다도 훨씬 눈에 띄겠지.

내 몸에는 세지도 못하게 수놓은 상흔이 그 얼굴에 하나 놓인다면 얼마큼의 노여움을 살까. 그런 짓을 저지르면 따귀 몇 대 맞는 걸로 그치지 않을 텐데 손톱으로라도 좋으니 하얀 꽃에 생채기를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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