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3 08:55•조회 53•댓글 3•검은
이 병원은 항상 고요를 노래한다. 신속함, 응급 조치, 하얀 옷들, 치료, 고쳐줌, 살아남, 생명, 등이 병원의 밝은 면을 이루고, 죽음, 안치실, 시체, 식물인간, 죽음 앞의 수술, 끝, 등이 어두운 면을 이룬다. 아무리 나아가도 고요를 노래한다. 오늘 빼고.
“괜찮으세요? 무슨 일 때문에 병원에 오셨나요?”
“안 괜찮습니다. 뇌가 깨졌어요!“
“네? 뇌가 깨지셨다뇨?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아, 지금은 깨진 조각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쟁반 위에 올려 놨어요. 보실래요?”
”아니, 이게 뭔“
”어때요?! 제 깨진 뇌가!“
계산과 컴퓨터로 행동하는 접수 데스크에 이상한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명: 깨진 머리. 접수 데스크 직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난해함 주의 난해함, 정신병 중의 정신병, 망상 중의 망상, 미친 짓 중의 미친 짓이었다. 이런 이에게 신경외과 의사를 추천해야 할까? 정신병원 의사를 추천해야 할까? 아니면 내쫓아야 할까?
한편, 그는 깨진 뇌가 있다던 그 쟁반은 병원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목재 식탁 위 금속으로 된 날카로운 쟁반이 그의 뇌를 지키려고 했다.
더욱 짜증나는 점은 이 작자가 늦은 밤 중에 와서 큰 목소리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모든 이들을 깨우며 말했다는 것이다. 아니, 조용히 말할 것을. 모든 환자들은 뇌가 깨진 그 이를 보기 위해 먹이를 본 개미 때처럼 모여 들었고, 이제 그는 환자들을 위한 최상의 간식이 되었다. 개미들에게 땅바닥에 막 떨어진 사과 잼 흥건한 초콜릿 쿠키가 된 꼴이다.
“진짜로 뇌가 깨졌어요? 농담이죠? 하여튼, 관심 받으려고”
건장한 키의 다리를 다친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와서 말했다. 그 남지는 그가 사기꾼이거나 주작 유튜버라고 여겼다.
“뭐, 혹시 정신적으로, 그러니까 마음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막 이러고 싶어요?”
이번에는 심장 치료를 앞 둔 아이의 엄마가 와서 말했다. 자신의 순수한 7살 짜리 아이가 옆에 있었기에 차마 정신병자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왜 이리 신경 써! 그냥 내쫓자고!”
우렁찬 목소리의 고래 같은 50대 아저씨가 와서 화를 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아저씨에게 그는 관종 정신병자였다. 저런 놈을 볼 바에는.
“잠깐만요! 제가 진짜로 지금 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해주세요. 돈 있어요”
그가 50대 아저씨를 애써 밀치고 접수 데스크로 돌아와 말했다. 그는 꽃보다도 향긋한 냄새를 가진 방금 ATM기에서 나온 뜨끈뜨끈한 5만원 지폐 60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뇌가 있다던 은쟁반에 덮개를 놓은 걸 눈동자를 굴려서 확인하고 있었다. 은쟁반과 덮개는 누군가 만지면 기관총이 될 듯 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주섬주섬 모았다는 지혜의 상징.
“아, 네”
접수 데스크 직원은 돈에 현혹 되어 어서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MRI를 찍으러 갔다. 그를 담당한 의사는 현00이라는 실수를 많이 하고 어리버리한 감이 조금 있는 30대의 의사였다. 도저히 많이 가르쳐 줘도 아무것도 못하는. 사실상 아버지가 이곳 병원장이랑 친해서 온 게 큰 낙하산이었다. 낙하산을 펼치며 들어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00은 뇌와 뇌 속의 지혜가 있었다. 그와 다른 의료진들은 MPI가 원통형 관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그는 거대한 관 모양의 MRI 속 터널 모양으로 들어갔다. 두더지가 땅 속으로 들어가듯 터널 모양으로 슬금슬금 지나갔다. 관 모양의 MRI에서 병원 의료진들은 실제로 그를 관짝에 넣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00은 그에게 작은 귀마개를 주었다. 그의 귀 끄트머리까지 전부 덮기에는 작았지만, 최소 굉음이 들리며 고막으로 퍼져나가는 걸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다.
MRI는 대략 20분이 걸렸다. 그는 그동안 본인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난 어디로 갈까. 난 뇌가 빠진 인간이야. 이제 이 고철 기계에서 나오면 난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 아니, 원래 매장 당했더라. 난 뇌가 없는 인간이야. 뇌가 깨졌지. 은쟁반에 전부 있어. 덮새로 그럴싸하게 덮힌. 누가 보면 안되는 데. 무서울 텐데. 아니, 내가 왜 그들 걱정을 해야지? 그래도… 그래도…’
그는 느꼈다. 어딘가 이상한 인간에게 따뜻한 심장이 있다니. 남을 걱정하는 심장이 있다니. 그 따뜻함, 친절함, 배려, 잃고 싶은 동시에 잃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뇌를 보고 놀라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무모하면서도 순수하고 용감한 7살 아이는 결국 덮개를 열었고, 여러 개의 탁한 회색 빛이 섞인 분홍빛 조각들이 보였다. 전부 구불구불하게 꼬여 있었지만, 무언가에 의해 전부 깔끔하게 절단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는 끊어진 기다란 돌기들이 있었다. 이 조각들은 보다 보니 느껴지는 게 있다.
‘뇌’
한편, MRI가 끝나고 그는 결과를 받았다.
‘검사 결과 뇌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
현00은 이 일이 끝난 뒤, 자신이 사내연애를 하는 의사인 이00에게로 갔다. 사실, 이00은 이미 하얀빛 결혼을 해서 부인이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00은 하얀빛을 가끔 버리고 분홍빛 연애를 다시 하고 싶어졌다.
“어머, 자기야~” 현00이 애교 섞인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우리 자기도 일 끝났어?”
이00이 더 듣기 좋게 말했다. 이00은 현00을 긴 팔과 구부러지는 날렵한 뼈로 이루어진 손으로 감쌌다.
한편, 뇌가 없는 걸 알게 된 그는 본인이 맞았다는 마음 동시에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마음도 들었다.
‘뭐,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뇌라는 지혜의 원천, 있어봤자 뭐하냐고. 지식 있어봤자 뭐하냐고. 다들 감정, 돈, 마음, 사랑에 현혹 되잖아. 아무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