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결말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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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8 23:07조회 66댓글 0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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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요가 아프다.


많이 아프다. 많이.


새벽밤에 콜록거리는 소리가 잦아져 잠에서 깼더니 한요의 몸이 불덩이같았다. 급하게 체온을 재 보니 39.5도. 경련하며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온도였다.


급하게 물수건을 준비하려는 날 한요가 말렸다.



오늘은 한요가 죽는 날이었다. 한요는 죽을 준비를 끝마칠 사람처럼 날 대했다.



- 담아. 미안해.



난 한요에게 말로 이루 다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 있잖아, 한요, 나 사실, 나 사실······.




그래서 절대 말하면 안될 금기 같은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지구에서 태어나지 않았어. 우주는 생각보다 아주 넓어. 그러니까, 나는, 우주 연방에서 온 공무원인데, 이야기를 끝내러······




횡설수설. 이야기를 끝내러 왔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하나하나 맞는 말인데 심장이 아팠다.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서류에 도장 찍는 것만큼 간단한 일들이 온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 우주 연방에 물어보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지도,
- 괜찮아.






- ······뭐?





한요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려고 해?

- 나 소원 빌고 싶은데.

- 내가 다 도와줄 수 있어, 나 연방에서 되게 높은 공무원이야.

- 소원 빌고 싶은데.

- ······

- 저번에 이겨서 딴 소원권 그거 쓸게.

- 응.

- 지금 당장 이 방 나가줬으면 좋겠어.




한요는 제멋대로였다. 그러나 연방의 결말 예측은 틀린 법이 없었다. 한요는 오늘 당장 죽는다. 고독사를 피하게 만드는 것이 결말 개척의 조건이었다. 이대로라면 한요를 놓치게 되고 개척마저 실패할 가능성이 생긴다. 최악의 수였다.




난 어떻게든 반항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선수친 건 한요였다.


한요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올라와 있었다. 그건 지구의 ‘이야기’이자 한요의 ‘독백’이었다.




[난 오늘 죽게 되겠지]


[한요는 이불을 세게 쥐었다. 제 앞에 담이 있었다. 한요는 담에게 제 죽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한요가 본 죽음은 모두 추했기에. 방사능에 노출되어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웠고 담이 제 죽는 모습을 보며 토하는 모습을 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한요에게 내일은 너무 멀었다. 오늘 죽음을 확신한 한요에게 내일은 평생 오지 않는 날이나 다름없었다. 한요가 원한다면 담은 지금 당장이라도 한요를 안을 것이다. 한요의 손을 잡을 것이다. 한요가 죽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이다. 자기가 죽어서라도, 한요를 살릴 것이다.]


[한요는 그게 싫었다. 죽음이라면 혼자서도 덤덤하게 맞이할 수 있다. 죽는 상상은 백 번이고 넘게 했으니까. 담 앞에서 죽음을 맞는다면 그건 몇 배나 더 아프겠지.]





- 제발, 나가.





한요는 내가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독백을 읽으면 속마음이 다 보인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아 모른다. 한요의 생각을 그대로 읽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쿡쿡 아팠다. 한요는 ‘같이 있자’는 말을 뱉는 것이 범죄행위라도 된다는 듯이 조심스러워했다. 그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였으며, 날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잔뜩 주눅든 채 뱉는 한요의 생각들은······





[그래도······ 생각으로만이면 괜찮잖아.]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는 건.]




고해와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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