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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9 18:47조회 36댓글 0세리아
Seria https://curious.quizby.me/Seri…


- 사유미! 오늘 외출해야 할 것 같은데?


냉장고에서 냉기가 흘러나왔다. 하루마는 한참이나 냉장고를 두리번거리더니 으슬으슬 떨며 사유미에게 소리쳤다. 기숙사 로비에서 한가롭게 보드게임이나 하던 사유미는 고개만 돌려 냉장고를 바라봤다. 반찬통이 어째 텅텅 비어 있었다. 어제 듣기로는 쌀도 거의 바닥났다던 것 같은데.


식료품을 사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여기서 시내까지는 차로 왕복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식료품 같은 걸 살 때에는 트렁크에 가득 차도록 한 번에 최대한 많이 사는 편인데, 아무래도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 네 명이 삼시세끼 다 챙겨 먹다 보니 바닥나는 일이 잦았다.


- 그러네. 또 운전해야겠는데 어쩌지, 하루마. 너 컨디션은 괜찮아?
- 배고픈 것만 빼면 최고지. 운전이 힘들긴 해도 요리는 항상 사유미가 해 주잖아. 요리가 더 힘들 텐데 다음번엔 나도 도울게!


그 말과 동시에 하루마가 만든 끔찍했던 김치찌개 맛을 떠올린 이치고가 화들짝 놀랐다.


- 진심이야? 안 돼!
- 저 정도로 혐오할 일인가?


아무래도 하루마는 입맛이 둔한 게 분명하다. 하루마는 확실히 정신 장애보다는 미각 장애에 더 가까웠다.


- 마트나 가자고.


사유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유미는 기숙사의 공식적인 보모 포지션이었다. 배고픈 사람이 보이면 밥 안 차리고는 못 참는 그런.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요리 한 번 해본 적 없었지만 죽기 살기로 아무거나 주워 먹다 보니 이건 이렇게 해야 더 맛있고 저건 저렇게 먹는 게 맛있고 하는 걸 배우게 됐더랬다.


- 기숙사 앞으로 내려와. 거기 기다리고 있을게.


하루마는 차키를 들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고. 사유미는 이치고에게 히로토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이치고는 띄엄띄엄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히로토의 부축받으며 방 밖으로 나왔다. 이치고와 히로토는 같은 방 룸메이트였다. 둘은 각각 시각과 청력을 잃었다. 그래서 서로 꽤 의지하고 지내는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이치고를 향한 히로토의 집착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었다. 이치고는 더듬거리며 로비 중앙 책상 위에 있는 목발을 짚어 사유미에게 건넸다. 히로토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수기 앞에서 멀미약 세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사유미도 히로토에게 빌린 멀미약 한 알을 삼켰다. 차 타기 두려운 건 운전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98km/h]


이 구린 봉고차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거지? 사유미는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핏줄이 터지도록 꽉 쥐었다. 이치고는 거의 죽어가는 얼굴이었고, 히로토도 버티기 힘든 눈치였다.


하루미는 난폭 운전자였다. 그렇다고 운전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끼어드는 각도가 예술이었다. 차 하나 달리지 않는 외진 도로에서 운전대 잡은 하루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달렸다. 포장도 덜 되어서 조금만 속도를 높이면 덜컹거리다 못해 차체가 요동치는 도로였음에도 그랬다. 시트가 덜컹거려서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구역감이 치밀었다. 하루마는 엑셀을 밟으면서 웃고 있었다.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운전면허증이 하루마밖에 없는 이유는 나머지 세 사람이 모두 운전면허 자격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하나 없다던가, 앞이 안 보인다던가, 눈이 안 보였다. 어디 하나 멀쩡하지 않은 곳이 있었으면 애초에 이딴 학교에 틀어박혀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겠지.


차오르는 구역질에 입을 틀어막고 있는 사유미를 뒤로 하고 히로토는 창문을 열었다. 정말 뒤질 것 같을 때 열기로 약속했는데 히로토에게는 지금이었던 것 같다. 봉고차 차창이 떨어질 듯이 아찔하게 열렸다. 굴러가는 게 비정상인 차인데 창문이 안 떨어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이치고의 표정도 뒤질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하루마는 그저 이 상황이 재밌어 보였다. 차 한 대도 없는 도로에 대고 경적을 얼마나 울리는지 나사 하나 빠진 애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정도가 심했다. 보다 못한 사유미가 하루마에게 소리쳤다.


- 하루마! 언제쯤 도착해?
- 이십 분 정도 남았, 어, 잠깐만!


그 비명과 함께.


끼이이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께름칙한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백 킬로의 속도로 질주하던 봉고차가 한순간 급격하게 속도를 줄인다. 운전대를 잡은 하루마의 손이 다급해지고 뒷좌석에 탄 히로토는 앞 좌석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타이어가 갈리며 마찰 때문에 연기가 치솟았다. 노면 위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내리막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어두운 도로를 비추는 건 자동차의 전조등이 전부였다.


곧이어 쾅, 하는 파격음과 함께 강한 충격이 내부를 덮쳤다. 봉고차가 커다란 나무를 친 것이었다. 크게 다칠 정도로 세게 부딪히진 않았지만 왠지 온몸이 뻐근했다.


- 뭐야, 하루마. 미쳤어?


이치고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쳐도 하루마는 입만 끔벅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무로 둘러싸인 이 차선 도로. 그 내리막길에 뿌옇게 들이찬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지였다. 하루마는 그 먼지 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조수석에 앉은 사유미 또한 그 먼지를 발견하고 무심코 소리치는데.


- 저게 뭐야?


그 말과 동시에 시뿌연 안개 속에서 커다란 차 한 대가 쏜살같이 스쳐 갔다.


방금까지 봉고차가 있던 도로를 그 차가 순식간에 덮었다. 역주행하고 있던 것이었다. 쌩하고 지나가는 소리에 이치고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건 차를 멈추지 않았다면 서로 마주 달려오는 그 속도로 부딪혔을 거란 뜻이었다.


차가 달려오는 걸 보기 직전까지도 안개 속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저 안개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시야각이 막힌다는 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돌파는 무리겠다고 생각한 하루마가 속도를 높이며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봉고차는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먼지 사이를 비췄지만, 빛은 그 어떤 것도 밝히지 못하고 금세 흩어졌다. 입자 하나하나가 빛에 반사되어 돌아왔다. 그제야 저것의 정체가 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건 모래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점점 수면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루마가 엑셀을 밟았다. 저걸 피해야 한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낡은 봉고차가 수명을 다한 듯 쇳소리를 내며 가속하기 시작했다. 하루마는 차선을 따라 빠르지만, 안정적으로 달렸다. 그건 하루마에게 제일 자신 있는 것이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시야로도 제 길을 찾는 것. 뒤쫓아오는 모래바람을 피해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 그 도로는 여전히 험악했지만 오는 내내 구시렁거리던 히로토도 하루마의 난폭운전에 별말 얹을 수가 없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꼬박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혹시 몰라 다른 방향으로도 내려가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깥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에서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를 마주했다.


- 와이파이도 안 터지는데.


휴대전화를 만지던 하루마가 중얼거렸다. 표정을 구기며 전파가 통하는 곳이 있는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 원래도 안 터졌어?
- 잘 됐지. 그래도 학교잖아.
- 안개 때문인가?
- 그럴지도.


하루마와 히로토가 휴대전화 하나로 실랑이하는 동안 이치고는 책장에서 점자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 사유미가 절뚝거리며 이치고에게 걸어갔다. 이치고는 시력이 없는 대신 청력이 비현실적으로 좋았다.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만 듣고 사유미임을 알아챈 이치고가 점자판에서 손도 떼지 않고 인사했다. 사유미는 이치고의 어깨 너머로 점자 책을 흘겨봤다. 페이지를 훑는 이치고의 손가락이 가늘다. 사유미 역시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꺼내 함께 읽었다. 이치고는 가만히 서서 무거운 점자 책을 들고 몇 페이지를 줄곧 넘기더니 말했다.


- 지구 멸망 시나리오 중에 더스트란 게 있대.
- 더스트?
- 응. 쉽게 말해 모래 폭풍인데. 건조한 기단에서 주로 발생한대. 기숙사 도착해서 보니 차 유리창에 모래가 묻어 있었거든.


사유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수석에서 안개를 정확히 본 사유미는 그 입자 크기가 기체나 액체라기엔 지나치게 컸던 걸 기억한다. 듣고 보니 비가 온 지도 꽤 됐던 것 같다.


- 나도 영화에서 더스트 관련 설명을 본 적 있어.


히로토가 사유미와 이치고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히로토의 입이 옹졸하게 움찔거렸다. 신경 안 쓰는 척 구화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뒤늦게 따라온 하루마는 그냥 어깨만 으쓱였다.


- 지구 멸망 시나리오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 그건 모르지.


적어도 자동차는 못 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말을 듣곤 하루마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했다. 지금 차가 중요하냐며 난리 치는 사유미의 호통에 겨우 표정을 폈지만.


- 1930년에도 텍사스에서 더스트가 일어난 적 있는데, 얼마 못 갔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치고가 하루마를 안심시켰다. 지구 멸망이라니 너무 터무니없는 얘기긴 했다.


- 그래도 며칠 동안은 시내에 못 나간다는 뜻이잖아.


히로토가 툴툴거렸다. 사실 식량이 다 떨어져 가는 터라 꽤 곤란한 실정이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아사할지도 몰랐다.


- 그럼, 내일 다시 외출해 보자. 일단 내일 아침은 굶어야 할 것 같아.


사유미가 말했다. 사실 그 말의 의중은 조만간 더스트가 가라앉을 거라는 확신이 기저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린 그들은 모두 별걱정 없이 잠에 들었고, 내일도 모래도 평탄하게 지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다음 날, 사유미는 막 날이 새던 차에 목에 이물질이 걸려 콜록거리며 잠에서 깼고, 비몽사몽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창밖으로 거대한 모래바람이 부는 것을 봤다.


다급하게 밖으로 나와보니 바람 소리에 먼저 깬 이치고가 창문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밤새 열어놓은 창틈 사이로 모래바람이 새어 들어오고 있던 것이었다. 사유미도 최대한 빨리 걸어가 이치고를 도왔다. 바람의 압력 때문에 창문도 쉽게 닫히지 않았다.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온 힘 다해 닫은 창문은 바람이 들어오려고 할 때마다 깨질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 이게 무슨 일이야?


그 소릴 듣고 하루마도 잠에서 깼다. 머리는 산발인데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랬다. 뭐라도 대답해 주고 싶었는데 사유미도 이치고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이치고가 히로토를 깨웠다. 일곱 시 반이었다. 평소대로라면 곧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여전히 데이터는 통하지 않고, 이 깊은 산속에서는 모래바람이 어디서 온 건지도 알 수가 없으니 그들로서 할 수 있는 건 평소처럼 학교에 가는 것뿐이었다.


- 우리 학교를 정부에서 포기하긴 해도 아직 학생들이 남아있는데 설마 담임선생님은 출근하셨겠지.


라는 게 그 네 명의 의견 도합이었다.


- 마스크 있는 사람.


우연찮게도 감기에 걸렸던 이치고가 사 둔 마스크 두 개가 남아있었다. 학교 탐방은 사유미와 하루마가 맡기로 하고, 부족한 마스크나 생활용품 같은 것들은 학교에서 훔쳐 오기로 결정했다. 이치고가 다리가 불편한 사유미를 대신해 자기가 간다고 난리 쳤지만, 이 중에서 그나마 사지가 멀쩡한 하루마가 격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반려되었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진 걸어서 일 분 거리였다. 모래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서 목발 짚고 바람의 맞은편으로 걸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스크 틈으로 들어오는 모래 덩어리들도 꽤 거슬렸다.


예상했듯 겨우 학교 안은 이미 더스트로 가득 차 있었다. 사유미는 하루마의 부축받으며 주변을 살폈다. 모래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망가진 교실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삼 학년 반에도, 교무실에도 가 봤지만 사람 한 명 없었다. 삼 학년은 학교를 밥 먹듯이 빠졌으니 그렇다 쳐도, 선생님까지 오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설마 도망갔나?


오늘이 휴교라는 문자는 오지 않았는데. 국가 재난 상황이면 산골짜기에 있는 학교여도 재난 경보 문자 정도는 울릴 텐데. 비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 사유미! 데이터 터진다!


의무실을 둘러보는데 하루마가 옆에서 소리쳤다. 하루마는 뭐라 검색하더니 사유미에게 폰을 내밀었다. 모래 사이로 핸드폰 빛이 비친다. 더스트. 전국 강타. 뭐 그런 뉴스들이 까마득히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작은 희망마저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 아...... 젠장. 돌아가자마자 물자 챙겨, 하루마.


사유미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 지금 학교 탈출 못 하면 다 같이 굶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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