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4 18:01•조회 52•댓글 0•낭만
애써 잊으려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한 발자국 멀어지면 두 발자국 다가오는, 잊으려 해도 잊지 못할. 영원히 귓가에서 바람과 함께 실려오는 소리. 그 파도 소리를 나는 잊지도 못하고 그 물결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파도는 너와 함께 맞이한 것이었다. 물결에 밀려와 모래를 한껏 적시고, 다시 저 먼바다로 멀어져 가는 파도가 있었다. 내 눈앞에, 그리고 네 앞에서. 너는 제 발 앞까지 다가온 파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물결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눈을 반짝이던 그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짓고서 너는 파도의 물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 반짝이던 눈은 달빛에 비친 것을 내가 착각하였는지도 몰랐으리라 생각했으나, 아래를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던 네 눈동자에 달빛이 들 리는 없었다. 달빛은 손에 닿을 수도 없을 높은 곳에 떠 있었으니까.
너를 향해 손 내밀으면 닿는 것은 무지함이었다. 나의 무지였다. 너와 함께할 수 없다는 순리를 어기려던 나의 무지, 나의 속죄. 나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을 소망하고 있었다. 그 소망은 피어나지도 못하고 썩어 있었다.
빛의 선구자, 악의 죄인. 우리의 사이를 이르는 표현들 같았다. 그 표현들 사이에 놓여 동아줄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다가가려 하면 이 동아줄은 끊어질 듯 저항했다. 나는 그럼에도 끊어지지 않는 동아줄을 빌미로 너를 사랑했으나 저항하는 것을 이길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너는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파도의 물결 소리가 좋다고 말했다. 물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기에, 그것을 선호한다던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다에 함께 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아줄은 저항하지 않았다.
바다. 너와 함께 온 발자국의 목적지였다. 바다의 생김새는 보는 순간마다 흔하여 외면하는 건 일상이었다.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유에서였다. 외면하던 날들과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외면하지 않았다. 바다를 눈 안에 가득 담았다. 바다와 너를 담은 내 눈동자에 달빛이 들었다. 눈부신 것도 내게는 외면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바다의 푸른 물결 소리가 조용한 모래사장까지 다다라 그것을 가득 채웠다. 너는 도착한 바다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물결 소리를 담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하여 나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물결 소리에 집중했다. 먼바다에서 모래사장에 닿는 것이 반복되는 걸 지켜보았다. 외면했던 지금까지의 모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곧이어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이 되고 시간은 꽤 흘렀으나 이젠 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을까. 나도 금방 일으켜 갈 준비를 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겠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너는 눈 안에 모든 바다가 담기지 못할 때까지 그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일말의 바다까지도 담으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너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너와 연락은 닿지 않았다. 평소에도 잘 연락이 되지 않는 상대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폰을 덮었다.
잠에 들었던 건지, 정신을 차리고 덮었던 폰을 들어올리니 보이는 시간은 돌아온 시간으로부터 3시간은 훌쩍 지나있던 시간이었다. 너에겐 여전히 연락 하나 오지 않았다. 네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통화 연결은 소리가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흔한 안부를 묻는 것도 어려워졌다. 나는 끝내 전화를 끊었다. 아마 부재중 기록이 남은 걸 본다면 확인한 너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그리고 조금 지났던가. 모르는 번호로 메세지에서 연락이 왔다.
바다에서의 네가 마지막이었을 줄은.
시간이 꽤 흘렀다. 네가 보이지 않은 그 순간부터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동아줄에 올라 있지 않았다. 이미 그것은 끊어진 지 오래였기에. 나는 지상 위에 서 있었다. 더 이상 끊어질 위험에 처해있던 동아줄이 아닌 안전한 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끊어질 동아줄 위에 서 있던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파도의 물결 소리가 끊기지 않고 있었다.
물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그 날의 바다에 갇힌 기분이었다. 분명 아무 바다가 아니었을 텐데도, 네가 있었기에 외면하지 않은 탓일까. 바다는 몇 번이고 다가와 내 귓가에 맴도는 물결 소리를 건넸다. 내 의도와 상관 없이 그 소리는 언제나 들려오고 있었다.
내 귓가에는 여전히 흐르는 물결 소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