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1 21:56•조회 15•댓글 0•구로
나는 초코우유를 좋아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편의점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초코우유 하나를 꺼내 마시면 이상하게도 지루했던 하루가 조금은 달콤해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기대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초코우유 하나가 놓여 있었고, 네가 내 옆을 지나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너 초코우유 좋아하잖아.
나는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할 만큼 좋았다.
누군가가 내 취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날부터였을까.
평범했던 하루에 네가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네가 오는 시간을 기다렸고, 쉬는 시간이면 괜히 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네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었고, 네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참 이상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인데,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하늘의 색도, 바람의 냄새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기억해 갔다.
비 오는 날, 매운 음식, 네가 좋아하는 한 밴드.
그리고 그 밴드의 노래 가사를 유난히 오래 바라본다는 것.
네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이 좋았고, 네가 나에게 웃어주는 순간이면 그날 하루쯤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느 겨울날, 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누구냐고 물었고, 네가 말해 준 이름을 듣는 순간 알았다.
내가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그날의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결국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 마음을 꺼내 보이는 순간, 지금까지 우리가 나눴던 평범한 순간들마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흘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고, 봄이 지나 여름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네 생각만 해도 마음 한쪽이 시큰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네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게 됐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까지도 진심으로 바랄 수 있게 되는 과정인지도 몰랐다.
나는 너를 좋아하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웠고, 기대하는 법을 배웠으며, 결국에는 놓아주는 법까지 배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소중한 만큼 상대의 마음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편의점에 들러 초코우유를 산다.
빨대를 꽂아 한 모금 마시면 여전히 달다.
그런데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난다.
그 안에 지나간 계절과 어린 날의 마음이 함께 녹아 있는 것 같아서일까.
이제는 너를 생각해도 아프지 않다.
다만 아주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보듯 조금 웃게 된다.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를 좋아했던 시간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다른 모습으로 남은 것 같다.
초코우유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는 달콤한 기억처럼,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아름다웠던 한 계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