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22:20•조회 44•댓글 0•해월
겨울의 바람이 골목 모서리를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공기는 하얀 숨결처럼 피어올랐다. 마치 누군가 이 냉기 속에 몰래 고백 한 줄을 적어두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조용히 손바닥에 담았다가 하늘로 놓아주는 것만 같았다. 가로등이 눈송이 위에 떨어져 반짝이는 순간, 청춘은 마치 시간이 다듬어낸 조각처럼 더 빛나 보였다. 너는 길고 좁은 골목을 지나며 어깨 위에 내려앉은 작은 눈꽃을 털지도 않은 채 걸었다. 그 작은 조각은, 세상 일 모르는 어린 별 같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바람은 바람의 길이 있고, 눈은 눈이 떨어질 자리가 있다고. 그렇다면 이 겨울에도, 우리가 가만히 마음속에 숨겨둔 자리 하나쯤은 있는 걸까.
눈은 점점 굵어졌다. 속눈썹에 얹힐 때마다 차갑게 닿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은 그보다 훨씬 따뜻했다. 겨울은 언제나 그렇다. 사람들은 청춘을 봄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겨울이야말로 청춘이기에. 겨울은 기다림을 가르치고, 버팀을 가르치고, 긴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려주기에. 네겐 눈 내릴 때 비춰줄 불빛이 있고, 걷는 길엔 바람이 실려오며, 마음에는 늘 작은 빛이 있기를. 흔들릴지언정 한 번도 완전히 꺼진 적 없는.
밤은 이미 깊었지만, 눈은 쉼 없이 내리고 있었다. 너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채 걸으며,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그 안에 넣어두었다.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함께 걸으면 괜찮아지는 일. 밤이 아무리 길어도 누군가와 기다리면 밝아지는 새벽. 눈이 아무리 쏟아져도,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
겨울 끝자락에 걸어둔 우리들의 시간이, 눈이 녹은 뒤에도 천천히 빛 모양으로 남아 있기를.
// 너무 오랜만이죠.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