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0 19:57•조회 45•댓글 1•sweetpea_ysy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빗방울이 거리 위로 쏟아졌고,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난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
"기다릴게. 너 돌아오는 그날까지."
그녀는 떠나기 전 그렇게 말했다.
난 그 말에 매달리듯 기다렸다.
하지만 계절이 몇 번이고 바뀌어도,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엔 그녀를 원망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그녀가 밉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보다 그리움이 커져갔다.
그들은 함께했던 날들 속에서 늘 꽃길을 걸었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들판 가득 피어있던 분꽃,
여름밤 강가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노란 장미들까지.
꽃은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는 증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길엔
꽃 한 송이 피어 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빗물만이
그의 발길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발길이 멈춘 곳은 오래된 벤치 앞이었다.
그녀와 함께 앉아 미래를 이야기하던 곳.
난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게."
그녀는 정말 더 좋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 그녀는 아직 날 기억하고 있을까?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만약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릴 것이었다.
그가 약속을 지킨다면,
아니, 혹여나 지키지 못한다 해도.
사랑했던 사람을 위해
마지막까지 꽃길을 남겨두고 싶었다.
설령 그 길을 혼자 걷게 된다 하더라도.